필리핀에서의 첫 주말을 맞이했다. 길고도 짧은 1주가 훌쩍 지나갔다. 필리핀으로 출발하는 화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한국을 떠난 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필리핀에서 첫 주말을 맞이했다.

토요일엔 농구와 가라데 수업을 했고, 일요일에는 줌바와 가라데 수업이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진행되었던 농구 수업은 기초 몸풀기 1시간으로 땀을 엄청 흘렸다. 그렇지만 땀을 흘린 거에 비하면 그렇게 까진 힘들지 않았다. 

처음엔 몸풀기 운동으로 시작해서 달리거나 제자리 뛰기 같은 점프력과 순발력이 필요한 운동을 했다. 평소 자전거와 수영으로 체력이 늘어 있었던 나에겐 결코 힘든 배움이 아니었다. ​


이후엔 3점 라인에서 한 발자국 정도 들어간 자리에 서서 슛을 연습했는데, 못 넣으면 푸쉬업 5회 링에 닿지도 않을 땐 푸쉬업 10회로 많은 운동량이 요구 되었다. 나는 처음이어서 그런지 코치님이 푸쉬업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다음주부턴 나도 해야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후엔 가라데 수업이 있었는데,  각각에 동작들이 너무나 태권도와 비슷하였고, 자세를 익히거나 각각에 동작들을 고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태권도를 꽤나 오랫동안 쉬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익숙해 있던 자세들 때문에 가라데 수업이 좀 힘들었다. 

물론 발차기 할 때 만큼은 익숙한 동작들 덕분에 훨씬 편하고 오랜만에 쭉 펼 수 있는 다리운동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좋았다. 뭔가 다시 태권도를 하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하루들을 보내고 일요일엔 줌바와 가라데 수업을 받았다. 물론 나에게 별로 흥미롭지 못했던 줌바는 다른 단원들만 수업을 듣고 나는 옆에서 구경을 하거나 단원들 사진을 찍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가라데 수업도 나는 받지 않았다. 

가라데 같은 경우도 수업을 받으면서 몸도 풀고 다시 유연해지면 좋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태권도와 너무 기본기가 비슷해서 품세나 세세한 동작들을 바꾸는 것이 너무 불편했던 나는 결국 가라데 수업은 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태권도와 가라데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 받았는데 이 둘의 차이는 태권도에 주요기술은 대부분 발차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가라데는 발차기 뿐만 아니라 손을 이용한 기술도 허용이 되고, 더 많은 기술들이 있었다. 

물론 태권도도 품세를 하거나 기본기에서는 손 기술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발차기를 쓰기 때문에 손과 발을 함께 쓰는 가라데와는 다른 운동이다. 

일요일은 정말 푹 쉬었다. 적응 못해서 잠도 잘 못 이루고 매일 밤 가라오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들 때문에 잠을 잘 못 잤는데 일요일 오후에 계속 낮잠 자면서 그 피로들을 풀 수 있었다. 앞으로의 생활도 기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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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파블로에 도착하고 나서도 계속되는 영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팀원들 외에는 한국말 할 상대도 없고, 여기 사람들 발음이 영어듣기 평가처럼 뚜렷하지 않아 더 알아 듣기어렵다.  모르는 단어 모가 많다보니 해석하기도 힘들었다. 

물론 간단하게 소통할 수 있는 말들도 있지만, 아직 내가 말문이 트이지 않아 소통이 더 어렵다. 나도 잘 소통을 하고 싶지만 쑥스럽고 부끄럽기도 하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다보니 소통하기 굉장히 힘들다.

아침엔 일어나서 YMCA에서 15분로 걸어 갈 수 있는 호수에 갔다. 정확한 이름 듣지 못해 적지 못했지만 다음엔 꼭 알아서 블로그에 남기겠다. 호수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산파블로 박물관을 방문했다. 우리는 산파블로 주변에 있는 7개의 호수에 관련된 전설에 대해 설명을 들었지만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니 사실 상 기억에 남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박물관에서 필리핀에 역사에 대해서도 긴 설명을 들었지만 간단한 단어만 들리고 거의 대부분 들리지 않아서 지루하였다. 박물관에 다녀온 후 9월부터 방문하여 피딩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될 학교로 향했다. 처음 국내교육을 들을 때만 해도 어린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대상이 달라졌다. 학교에는 초, 중, 고 학생들이 다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나이와 학년 개념은 버려야 했다. 아이들의 발음이 능숙하지 않아 솔직히 알아듣기 어려웠다.  1달이 지나고, 2달이 지나면 조금 더 잘 들을 수 있게 될거라는 기대는 있다. 기본적인 자기 소개는 할 수 있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 일상 대화를 이어가긴 어려웠다. 단어라도 조금 더 익히고 나면 바디 랭귀지를 섞어가며 이야기 하면 웬만큼은 가능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오전 시간에 호수와 박물관 피딩 프로그램을 진행할 학교를 돌아보고 다시 YMCA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3시반까지 쉬었다가, 마미에게 산파블로YMCA의 설립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Y가 만들어지기까지 역사를 영어로 들었다. 한국말은 조금 흘려 들어도 나중에 기억할 수 있지만 영어는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굉장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해석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고, 멘토누나의 통역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평소 한국에서 있을 때 영어와 별로 친하지 않았으며, 고등학교 때도 그렇게 영어와 친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영어 학원도 다니고 하며 조금 외우는 것이라도 있었지만 약 3년을 놀고 졸업 후에도 영어랑 친하지 못한 상태이다 보니 지금 많이 힘들다.

물론 필리핀 파견 전에 집에서 영어 공부 좀 하고 가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필리핀 파견이 현실로 와 닿지 않다보니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더 힘든 것 같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바탕Y 친구들과 함께 갔다가 왔다. 바탕Y는 한국으로 치면 학교 밖 청소년 개념인데, 다음에 산파블로 YMCA를 소개할 때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겠다.

마트에 다녀와서는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6개월 동안 지내면서 1달에 한번씩 바탕y 친구들과 베프가 되는 제비뽑기을 진행했다. 이 베프에 의미는 현지 생활 적응도 하고 함께 공부도 하라는 의미에서 짝을 지어는주는 것인데 마미의 아이디어이다. 

영어로 듣기, 말하기가 잘 되지 않은 나는 굉장히 걱정이 되 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가짐으로 지내고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산파블로YMCA 설명편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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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상 시간은 8시. 9시에 아침을 먹고 11시 부터 마닐라 '시티투어'를 했다. 우리는 시티투어를 하고 바로 산파블로로 이동하는 일정이어서 일반 버스 대신 마닐라Y 벤을 타고 이동했다. 시티투어는 성당, 공원, 박물관 순서로 진해 되었다. 필리핀이 카톨릭 국가이기 때문이겠지만 박물관에는 성당 또는 신부님 모습을 그려 놓은 그림들이 굉장히 많았다.


보통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둘러볼 때는 한 작품에 충분한 시간을 머물러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파블로로 이동도 해야하고 볼 그림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차근차근 자세히 들러볼 수 있는 여유 없어 아쉬웠다. 

박물관에는 종교와 관련 없는 다른 작품들도 있었는데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보며 나도 저런 그림들의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들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여유있게 살펴보지는 못했다.  
시티투어를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나는 기절하듯 잠 들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급격히 피로가 몰려홨고, 산파블로까지 차로 계속 이동하였기 때문에 여유롭게 잠을 청했다.

산파블로로 넘어가기 전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는데 또 다시 패스트푸드점 이었다.  우리가 사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주셨고, 벌써 싫증이 날 정도다. 너무 기름지고 짠 음식을 매일 먹다보니 조금 힘들었고 다시 살이 찌는 듯한 느낌이어서 걱정도 된다. 

점심을 먹고 다시 차를 달려 산파블로시로 향했다. 약 1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한 숨 자고 나니 더 이상 잠도 오지 않고해서 그냥 노래만 열심히 들었다. 산파블로 YMCA에 도착해보니 많이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농구장도 굉장히 크고 숙소도 나쁘지 않았다. 

짐 정리도 덜 되고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감도 안 잡히지만 그래도 일단 기대가 되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 또래 청년들이 보였고, 영어로 인사하고 영어로 대화하는데 듣는 건 가능했지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말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우리말은 머리 속에 맴돌지만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는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무척이나 힘들어 하는 중이다.

적당히 짐을 풀고나니 우리를 환영하는 파티를 준비해주었다. 카메라를 챙겨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쉽지만 계속적인 영어듣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컸다. 환영파티를 하며 우리 단원들에게 영어이름을 지어줬는데, 내 영어 이름은 ALDEN으로 정해졌다. 

ALDEN 필리핀 남자 배우의 이름이라고 했다. 처음엔 배우라 해서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 인터넷에 이 배우를 검색해보고나서 더 부담스러워졌다. 이 배우의 이름을 검색 했을 때 연관 검색어에 필리핀 미남배우라고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배우와 나의 닮은 점은 키가 크다는 것 뿐이다. 

어쨌든 산파블로 YMCA 도착 이후엔 아직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다. 차에서 정신 없이 보내고 앞으로의 생활이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였으며, 모기나 쥐 때문에 조금 걱정도 된다. 내일부터 산파블로YMCA의 시설과 주변 자연환경과 풍경을 살펴보고 글을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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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0분에 필리핀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하였다. 현지에서 구입할 거라고 생각하고 샴푸를 사오지 않은 나는 아침에 어떻게 씻을지 고민하다, 폼클렌징으로 씻을 생각을 하였는데, 샤워장에 비누가 있어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비누로 감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침은 joilibee(졸리비)에서 간단하게 햄버거와 팬캐익을 먹었다. 맛은 있었지만 많이 먹을 수는 없었다. 우리 집에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다보니 이곳 음식이 너무 기름지고 대체로 짰기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아서 먹기 어려웠다.

아침을 먹고 9시 30분쯤 필리핀 연맹으로 돌아와 필리핀 YMCA 역사 이야기를 듣고 어떤 활동들을 해왔고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를 받았다. 강의 시작 전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는데, 모든 소통을 영어로 하다보니 정말 영어가 늘지 않을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는 당연히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말이 빨라서 인지 알아듣기 어려웠고, 결국 멘토누나의 간단한 한국어 통역으로 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필리핀Y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마미와 간단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듣기 많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들려오는 아는 단어들이 많은 문장들은 조금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강의를 듣고 SM몰DP 갔다.  한국의 롯데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곳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잠시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비슷하지만 낯선 대형마트를 약 1시간 정도 둘러보고 바로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잠을 청했고, 오후 3시에 다시 필리핀 Y연맹으로 가서 저녁을 몇시에 먹을건지를 정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했다. 

숙소에서 쉬면서 '앞으로도 이런 휴식 시간이 많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날은 영어가 가장 고민이었는데 둘째 날 생긴 고민은 앞으로 빈 시간들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두 번째 고민이 생겼다.  

저녁 6시 우린 다시 SN몰로 향했다. 필리핀 식사문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자 자기 먹을 음식을 시키지 않고 네 다섯가지 공통 메뉴를 주문한 다음 각자 자기 그릇에 담아서 먹었다. 필리핀에 와서 현재까진 계속 그렇게 먹고 있다.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다시 마트를 둘러보았다. 앞으로 6개월을 지내면서 SM을 이용할 일이 많을테니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 낮에는 옷 매장만 보고 나왔는데 저녁에는 지하에 식품관을 살펴보았다. 낯선 외국 음식들과 향신료를 구경하다 보니 옷을 볼때 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낮에 옷 구경 할때는 깜박하고 사진을 찍지 않았다. SM마트를 구경하면서 느낀 건 뭔가 인터넷 쇼핑몰을 한 건물에 다 집어 넣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의류 매장은 선택에 폭도 넓고 옷도 다양하고 재질도 좋아 보였다. 국내에도 알려진 브랜드 제품들은 한국보다 가격이 싸서 쇼핑욕구가 많이 솟았다.

작년 기수가 쇼핑을 되게 많이 했다던데 막상와서 경험해 보기 전엔 이해가 안 되었는데 경험을 해보니 쇼핑에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 이해가되었다. SM 정말 들어가서 느낀 의식주 중에 의식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보다 디자인도 이쁘고 가격도 싸서 너무 좋았고 돌아 갈 때 옷은 한 벌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과를 마치고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는 SM몰에서 시작해서 SM몰에서 끝났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SM몰 안에서 먹고 노는 것도 SM몰에서 놀았다. 한국에서 필리핀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첫날에 비해 시간적으로는 훨씬 여유로웠고, 적응도 꽤 된 편이어서 조금씩 안정감이 생긴다. 그래도 긴장의 끈은 놓지 못하니 여유로워도 여전히 피곤한 하루다. 

마지막으로 오늘 먹은 음식 사진들이다.  첫번째는 아침식사고 밑으로는 점심, 저녁 메뉴에 먹었던 음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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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8시, KCOC가 파견하는 '꿈꾸는 청년 봉사단' 단원으로 필리핀에 6개월 간 국제자원활동을 하러 떠나게 되었다. 전날 오후에 서울에 올라와 마지막으로 마트에 들려 빠진 준비 물품들을 추가로 구매하고 새벽 4시 30분에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필리핀 산파블로로 파견되는 인원은 나를 포함하여 4명 이다. 나 혼자 남자이고 멘토를 포함해 여자가 세 명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빠르게 게이트를 통과하여 엄마와 마지막 전화 통화를 하고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고 4시간쯤 지나 마닐라에 도착했다. 막상 마닐라 공항에 도착해서도 6개월 간의 해외봉사활동이 별로 실감 나지 않았다.

필리핀은 교통이 원활하지 못해서 마미(필리핀 산파블로 YMCA 크리스티 사무총장님을 '마미'라고 부름)께서 조금 늦게 도착하셨다. 마미도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더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가와서 우리나라보다 시원한 느낌이었다. 마미를 만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필리핀 YMCA연맹으로 왔다.

숙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고, 필리핀은 KCOC에서 교육 받을 때 상상했던 것보단 괜찮은 편이었다. 사실 도착하면서부터 앞으로의 지낼 일이 걱정되긴 하였지만 나름 즐겁게 최대한 웃으려고 노력 중이다. 언어적인 부분도 최대한 귀 기울여 알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말이 안되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짧은 영어로 라도 기회가 되면 내 생각을 이야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마닐라에서 이틀을 머물고수요일에 산파블로로 이동한다. 마닐라에서 2박을 하는데 필요한 짐을 따로 챙기고 남머지 큰 짐들은 산파블로 YMCA로 먼저 보냈다. 필리핀 YMCA 연맹에 들러 간단한 인사를 하였다.

5시반부터는 저녁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마카티 YMCA총장님, 연맹사무총장님, 마미, 현지 간사님 2명 그리고 이윤희 국장님(한국YMCA연맹 소속)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다들 필리핀 음식이 많이 짤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음식을 먹어보니 조금 짜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하지만 이것 저것 새로운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정말 짰기는 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들을 위해 마카티 사무총장님께서 정말 많은 음식들을 시켜주셔서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저녁 식사 때 먹은 음식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역시 망고 쥬스였다.

한국에서 먹던 인공적인 맛과는 차원이 다른 현지 망고 정말 리얼 망고 쥬스를 먹었다. 정말 말로 표현을 다 못할 정도로 맛있었다. 6개월간 망고를 정말 질리도록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녁을 먹은 이후 숙소에 도착하자 다들 너무 피곤해서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혼자라서 방도 혼자 써야해서 일찍 방에 들어가지 않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방에 들어가면 혼자지만 로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 덜 외로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산파블로로 이동해서는 뭔가 의미있게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카메라를 챙겨왔지만 사진은 비가 와서 잘 찍지 못했고, 필리핀 생황이 조금 더 정리되면 사진슬라이드로 짭은 동영상이라도 제작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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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전국연맹 소속으로 필리핀에 '국제자원활동'을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6개월 이라는 긴 시간동안 해외에서 지내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YMCA 합숙이야기에서 조금 더 하겠다.

7월 11일 창원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KCOC에서  7월 12일부터 22일까지 진행하는 11일간의 국내훈련을 받기 위해 서울에 왔다. 국내 훈련 교육장소로 가기 위해 1호선을 타고 '도봉숲속마을'로 향했다. 1시까지 도착해야 했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해보니 점심을 먹기엔 너무 애매한 시간이어서 점심은 건너 뛰고 시간을 맞춰 숲속마을에 도착했다.

맨 처음 날 반겨 준 사람은 같이 가는 멘토 누나였다. 항상 활기찬 이 누나는 언제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6개월 지내면 적응이 될테지만 그 전까지는 좀 힘들거 같은 예감이 든다. 어쨌든 처음 도착했을 때 6개월간 같이 파견되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파견되는 꿈봉단원들을 만났다. 케냐를 가는 팀원들도 있었고 우리들처럼 필리핀으로 가는 단원들도 있었다. 꿈봉단원은 총 4팀으로 14명 정도였다.

국내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KCOC가 무엇인지 꿈봉(꿈꾸는 봉사단)은 무엇을 하는지 설명을 듣고, 이후 프로그램은 다 함께 친해지는 친교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14명 중에서 3명은 남자이고, 나머지 11명이 여자였다. 낯가림이 있지만 특히나 여자에게 낯가림이 있는 나는 말을 거는게 힘들었다. 하지만 일찍 도착해 있던 다른 팀 소속 멘토누나가 먼저 말을 걸어줘서 낯가림에서 벗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로그램은 다 같이 모여서 했는데 YMCA에서 이런 놀이를 자주 해오다보니 쉽고 빠르게 적응해갔다. 우리와 함께 놀이를 진행해주시는 분도 굉장히 활발한 분이었는데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빠르게 적응을 했다. 그리고 되게 간단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놀이를 하면서도 진중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먼저 말 거는 걸 잘 못한다. 하지만 먼저 말을 걸어주고 조금 친하게 지내고 낯가림이 없어지면 굉장히 말도 많고 잘 웃고 편하게 지내는 편이다. 본론으로 돌아오면 편해진 이후엔 그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듣는 걸 좋아하는 만큼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고 비슷한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살아온 삶을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첫날의 프로그램은 굉장히 의미있고 좋은 시간이었다. 소통하는 대상이 어른이 아닌 나와 비슷한 또래여서인지 더욱 더 좋았던 거 같다. 나보다 누나 형인 사람들도 있는 반면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솔직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와 저 나이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태봉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너무 의미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태봉고를 가서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이런 경험을 일찍 하기 위해 지원 하였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솔직히 나라면 저런 어린 나이에 해외 봉사활동을 갈 용기를 낼 수 있었을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사실 이제 스무살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두렵다. 내가 6개월간 필리핀에 가 있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 이유가 마땅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이 두려움에 긴장이 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프로그램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알아가면서 조금 더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게 너무 좋은 거 같다. 함께 가는 단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같은 나라에 함께 파견되는 사람들과의 친목 도모도 정말 좋은 거 같다. 첫날이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날이어서 너무 기뻤고, 앞으로의 하루 하루도 정말 기대된다. 훈련이 끝나고도 서로 연락을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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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에서의 2번째 날. 아침의 날씨는 매우 흐렸다. 날짜로는 15일 이었던 이 날은 제주도에 비 소식이 있었다. 그래서 인지 날씨는 정말 많이 흐렸다. 이 날 원래 계획은 모슬포 항에서 마라도를 가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비도 오고 안개도 짙어 마라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서귀포시까지 달렸다. 이날 안개도 짙었지만 코스도 도와주지 않았다. 둘째 날 자전거를 조금 무리하게 탔는지 약간의 오르막에도 정말 힘들었다. 평지도 아닌 것이 가파른 오르막도 아닌 그런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런 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바람도 많이 불었고, 정말 최악의 날씨였다. 힘들지만 약간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쉬지 않고 폐달을 밟았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고 보니 내가 오던 길은 송악산을 오르는 길 이었다. 그 길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서귀포시에 제대로 들어섰다. 그리고 무슨 관광지를 지나 왔는데 사실 자전거에 내려 구경하고 싶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날씨도 별로였고 몸도 좋지 않아 그냥 밥을 좀 괜찮은 걸 먹고 싶다는 생각 뿐 이었다.

 그렇게 달려 점심시간이 되었다. 가는 길에 칼국수 집이 있어 들어갔다. 평소 면을 좋아하던 나는 밥보다 면이 더 먹고 싶었다. 아마 전날 제대로 못 먹어서 맛있는 것이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들어가서 감자옹심이손칼국수를 시켰다. 감자옹심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일단 시켰다. 제주도에서 새로운 것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마음 이였기 때문에 일단 시켰다. 처음엔 보리밥을 주었다. 보리밥에 물김치를 잘라 고추장에 비벼 먹으라며 주었다.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파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고추장이 좀 매웠긴 했지만, 내가 원래 매운 걸 잘 못 먹는 편이어서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태봉고를 다닐 때 제주도 이동학습으로 왔었지만 강정마을은 한번 도 방문한 적이 없어 처음으로 갔다왔다. 강정마을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평소 sns 또는 뉴스를 통해 해군기지건설 반대에 관한 자료는 많이 봤었지만 직접 가서 보는 거와는 많이 달랐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해군기지건설 반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사이에 세월호 노란리본도 그려져 있었다 강정마을을 지나오면서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에 젖어 강정마을에 있는 공원에서 30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강정마을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데 외국인들이 이런 마을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지 참.... 창피하다.

 이후 나는 얼른 슬로우시티 게스트 하우스를 향해 갔다. 천지연 폭포도 들리려 했지만, 천지연 폭포에 도착하기 전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그냥 게스트하우스를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간 시간은 약 5시였고,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의 실내 내부 모습이다. 셋째 날 묵은 이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았는데 이 게스트하우스는 남녀혼숙이라는 점이 첫 여행인 나에겐 조금 신기한 경험 이었고, 말이 안 통했던 나는 그저 친구나 가족과 통화하거나 카톡하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른 전날 게스트하우스에 비해 사람도 다양하게 많이 있었지만 언어가 되지 않아 심심한건 똑같았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음 먹은 것은 정말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국외든 국내든 영어는 어딜가나 쓸데가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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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6시 반쯤에 기상하여 대충 세수만 하고 나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온 나를 반기는 맑은 날씨와 햇살을 받으며 여수 엑스포 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엑스포역 옆에 위치한 여객 터미널에서 나는 8시 30분 배를 탔다. 배 안의 시설은 작은 카페와 뷔페 느낌의 식당이 하나 있었다. 매점은 당연히 있었고, 위층에는 오락실도 있었지만 이용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탔던 날엔 선내 공연이 있었고, 나는 공연을 즐기기 보단 선상에서의 아침을 즐기고 객실로 돌아와 시간을 보냈다.

 13시30분. 배가 제주도 연안에 도착했다. 금방 내릴 거 같아 짐을 챙겼다. 하지만 연안에서 3~40분 가량 머물더니 내리고 난 시간은 14시 30분 이었다. 원래 집에서 짠 계획은 13시 30분에 내려 제주도 연안항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할 계획이었으나 조금 늦게 내리는 바람에 점심을 포기하고 그냥 자전거를 탔다.

 항에서 나와 길을 가는데 ! 어째서! 하필! 내 첫 여행에! 도로공사를 하냐고!!’라는 생각을 하며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전날 밤 국토종주를 했다는 분의 말이 생각났다. “제주도는 길도 별로고 무엇보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타기 힘들고, 자전거 여행에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저는 제주도 종주를 포기했었거든요...” 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보낸 어떤 관광객 형의 말에 나는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뿌리치고 고등학교 때 제주도 이동학습을 했던 길을 생각하며 자전거를 탔다. 

 하지만 길을 달리면 달릴수록 여수에서 만났던 분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왜냐하면 자전거 도로에 갓길 주차마냥 불법주차가 많아 자전거 여행객들은 어쩔 수 없이 차도로 가야하는 일이 계속 되었다. 짐을 싣고 가던 나는 조금은 불안한 감을 가지고 계속 달렸다. 그래도 중, 고등학교 때부터 자전거 국토순례를 했던 경험이 있고, 평소 아침에 매일 수영을 다녀서 체력적으로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그러다 첫 여행 제주도에서 첫날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화장실을 잠시 갔다 온 사이 가방에 있던 지갑을 털린 것이다. 물론 지갑에는 현금 5만원 정도 있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다른 비상금들은 각각 가방에 분산 되어 있었고, 카드와 보안카드, 면허증 같은 경우는 내 휴대폰 지갑 안에 들어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도 첫 여행에 지갑을 털려서 인지 점심도 잊고 약 1시간 가량을 넋 놓고 그냥 길 따라 자전거를 달렸다. 사실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화장실을 다녀온 후 약 20km를 더 달리다 배가 너무 고파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지갑을 찾다 그때서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눈치를 챈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넋을 놓고 달려서 인지 주변 사진은 찍지 못했다.

이후 일단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가족들에게 알리고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 아직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할 곳이 많고 방문하려고 하는 곳이 많이 있는데지갑 잃어버린 걸로 이렇게 넋 놓고 있으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에 정신차리고 다시 달렸다.

 식당에서 밥을 못 먹어서 인지 너무 배가 고팠다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오늘은 원래 텐트치고 야영을 할 계획이었다그래서 지갑은 잃어버렸지만 여행을 즐기기 위해 편의점에서 김밥과 라면 그리고 음료수를 사서 자려고 했던 수월봉으로 향했다거리뷰 상에서의 수월봉은 정자가 있어 텐트를 치고 잠을 잘 수 있을 거 같았다그래서 조금 더 힘내 달렸다

 수월봉이 아무래도 이다보니 올라가는 경사가 굉장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정말 각도가 화려했다. 자전거에 짐도 달려 있어서 무게 중심이 뒤로 가 있는 상황에서 정말 타기 힘들었다. 그래도 거기만 올라가면 해 지는 노을도 보고 좀 힐링을 하면서 잘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천천히 한발 한발 폐달을 밝고 올랐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 나는 뿌듯함보다 멘붕을 먼저 받았다. 올라갔더니 수월봉은 공사중 이었고, 잘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일단 지갑을 잃어버렸던 충격이 있어서 인지 정신 차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수월봉에서 차귀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나는 다음 날 가려 했던 모슬포 항까지 20km를 이 날 추가적으로 더 달렸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 배에서 내리는 시간도 1시간이 더뎌지고 길도 별로 안 좋고 더군다나 잠시의 실수에 지갑도 잃어버리고, 원래 야영 하려고 했던 곳은 공사중이고, 굉장히 멘붕의 연속인 하루였다. 추가적으로 더 달리게 된 20km의 거리는 너무 지처버린 나한테 굉장히 먼 거리였다. 평소 상태였다면 20km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였으나, 너무 지쳐있던 나에게는 굉장히 먼 거리였다.해가 지는 모습이다. 정말 이뻤다. 멘붕이 온 나에게 따뜻한 위로같았다.

 하늘은 이런 나에게 보상 해주 듯 멋진 야경을 보여주었고, 밤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모슬포 항 주변에는 해수욕장과 함께 야영장이 있었는데, 나는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해도 떨어진 후였고, 혼자 텐트 치기엔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어 야영장 주변에 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둘째 날이 흘러 갔다. 제주도에서 다녀오고 5일이 지난 23일 제주 경찰서로부터 우편물을 받았는데, 그 안에는 나의 신분증과 지갑이 있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고 내 지갑을 찾아준 제주서부경찰서 생활질서계에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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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지 않는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졸업 이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지내며,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5월 연휴기간에 아빠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말씀 하셨고, 나는 아무래도 혼자 하는 첫 여행이다보니 두려움 반 설렘 반 이었다. 첫 여행이어서 정말 꼼꼼하게 짰다. 코스를 짜고 저녁은 어떻게 먹을건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전부 계산하여 준비했다. 13일부터 18일까지의 5박6일의 여행이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는 것만이 아니라 중간엔 야영도 할 계획으로 텐트와 침낭도 들고 갔다.

준비 기간으로 부터 1주일이 지나고, 13일 오후에 짐들을 가지고 마산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마산에서 여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여수로 가는 이유는 작년부터 부산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가 없어졌다. 그래서 여수 엑스포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엔 배 자리가 없었는데 여수 엑스포 여객선 터미널에는 자리가 굉장히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수로 가는 것이다.













 여수에 도착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내가 이번에 묵었던 곳은 24guesthouse 라는 곳 이었는데 원래는 엑스포 안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려고 했으나 여수엑스포게스트하우스는 예약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엑스포 맞은편에 있는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게 되었다.

 내가 자는 객실은 4인 남성 도미토리룸 이었다. 첫 여행이다보니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룸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서 지냈던 터라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처음 내가 들어갔을 땐 방에 아무도 없었다.

 2층 침대가 2개가 있고 각 방마다 와이파이(WIFI) 가 있어서 굉장히 편안했다. 문 앞에 있는 침대 2층이 내 자리였다. 괜찮은 시설에 카운터에 계시는 직원분의 친절함도 별 5개 만점을 주고 싶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짐을 대충 풀고 엄마와 통화 후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은 엑스포 주변으로 식당을 검색했고, 혼밥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많은 식당들이 문 닫은 곳이 많았으나 다른 블로그에 올려져 있던 식당은 다행히도 열려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는데 블로그 평에서는 음식이 많이 짜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조금 짜게 먹는 편이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일반 백반을 시켰는데 김치찌개와 함께 미역국이랑 여러 밑반찬이 나왔다. 다른 블로그의 평 대로 정말 짰다. 매운 걸 잘 못먹는 나에겐 정말 맵고, 짜서 힘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다보니 맛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며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랑 후식을 좀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여행 첫날부터 돈을 많이 쓰는 건 아닐 거 같다는 생각에 그냥 밥만 먹고 숙소로 들어왔다. 들어와서도 딱히 할 게 없던 나는 야경 구경겸 자전거와 카메라를 들고 엑스포로 나갔다. 엑스포로 나갔더니 직원이 엑스포 내에서는 이륜차는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였고, 나는 할 수 없이 엑스포 앞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카메라만 들고 들어갔다.




 너무 어두운 밤이여서 그런지 사진 찍기가 너무 힘들었다. 가로등이 있고 천장에 전광판이 있어 밝다고 하지만 사진을 찍기엔 내 실력에 한계가 조금 있는 거 같다. 

 엑스포 안에는 대부분 가족 단위로 왔거나 연인들 밖에 없었다. 밤이다 보니 뭐 딱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생각난 것이 '엑스포 안 이륜차&자전거 통행금지 이면 나는 다음날 아침에 어떻게 엑스포에서 배를 타야하지?'하는 생각에 근처 직원에게 물었고, 자전거는 엑스포를 돌아서 터미널로 가는 길이 있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길을 빨리 못 찾을 수 있을 위험에 대비해 저녁에 직원이 안내해 준 길을 먼저 가보았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내가 들어오고 얼마 안 있어 다른 사람들도 들어왔다. 다들 여수를 한바퀴 돌아보고 온 사람들이어서 나는 뭔가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나보고도 어디가냐고 물어봐서 제주도에 자전거 타러 간다고 했더니, 어떤 한분이 자기도 제주도 빼고 국토종주 했는데, 제주도 자전거 길 평이 별로 좋지 않아 제주도 가려다 포기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나 보고는 어디 가봤냐고 묻길래, 아직 제대로 돌아본 곳은 없지만 낙동강 자전거 길을 타본 적은 있다고 얘기하며, 자전거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었다.

 낯가림이 있어 먼저 대화 거는 것을 잘 못한다. 그런데 먼저 말을 걸어줘 너무 고마웠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어떤 코스는 힘들고 어떤 코스는 편한지 어떻게 가면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지 등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나는 먼저 잠을 청하기로 하고 했다. 그러고 하나 둘 다들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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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올 여름에도 빠지지 않고 국토순례에 다녀왔다. 올해로 5번째 다녀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참여 했던 자전거 국토순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 3번은 자전거를 탔고, 작년과 올해에는 영상과 사진에 취미가 생겨 홍보팀으로 참여를 했다. 작년의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작년에는 사진을 찍고 실전 경험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아직도 나는 한참이나 멀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계기였으며, 또한 약간의 창피함이 있었다. 올해도 사실 조금 자신이 없어서 사진만 찍고 영상은 내가 만들지 않기로 하고 홍보팀에 참여했다.

 올해에는 부산에서 출발을 했다. 첫날은 다 같이 강당에 모여서 각 지역별 소개와 실무자들과 각 팀들을 소개 하는 시간을 보냈다. 올해 국토순례도 이렇게 시작 되었다. 올해에도 역시 자전거는 타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 사진을 찍으니 하루에 1000~2000장정도 사진을 찍었다. 작년처럼 막 연사로 찍는 것이 아니라 1장도 신중하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국토순례 기간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날씨가 정말 맑았다. 날씨가 맑은 만큼 정말로 더웠다.

 사실 올해 국토순례 사진은 조금 더 사진수준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 컸다. 왜냐하면 3학년 때 하는 졸업앨범을 나도 참여하거나 기회가 된다면 내가 맡아서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방학 때 국토순례에 다시 참여하여 조금 더 멋지고 괜찮은 사진들을 찍으며 연습을 하고 싶었다.

 실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사진을 조금 더 잘 찍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배들을 가르치려고 사진에 관해 공부를 조금 했더니 확실히 실력이 늘어난 것 같다. 그리고 올해는 사진 찍을 때 절대 연사를 하지 않고 찍기 때문에 더 잘 나온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을 매일 저녁 초점이 흐린 사진이나 각도가 어색하거나 이상한 사진들을 지우는 작업을 했다. 저녁마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잘못 된 부분을 계속 보는 것이 큰 공부가 되는 것 같았다.

 국토순례에서 밤마다 실무자 회의를 한다. 나는 이 회의가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 하는 회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낮에는 각각 팀별로 움직이기 때문에 얼굴을 볼 시간이 잘 없다. 그래서 인지 나는 이 회의 시간이 특별하게 느꼈고, 좋은 말들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낯가림이 심했다. 낯가림이 심해서 인지 작년에는 홍보팀과 마산지역 아이들, 그리고 나에게 먼저 말 걸어주는 사람 이외엔 소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용기를 내어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본다면 로드팀에 동아대, 건양대 싸이클팀 형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매년 있는 의료지원팀에 간호학과 누나들과도 친해지고 싶었다. 형들하고는 자연스럽게 같이 이야기도 하고, 도와드릴 거 있으면 도와드리면서 친해져 갔다.

 간호과 누나들에게는 솔직히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근데 친해지고는 싶었다. 누나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갔다고 하기 보단 어쩌다 보니 말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선 제일 적극적으로 다가갔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잘 몰랐었다. 나는 그저 조금 더 친절하게 공손하게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했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싫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진심을 가지고 계속 다가갔다.

 나는 사진 촬영을 할 때 여러 곳에 올라갔다. 육교나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갓길에 차를 세워 사진을 찍을 때가 많았는데 딱히 올라설 때가 없을 땐 차 지붕위에도 올라갔다. 가끔은 차 안에서 사진을 찍는데 차 안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차문을 열고 찍기도 했다.

 매일 사진을 찍고, 밤에는 작업을 하고, 작업을 하다 시간이 남으면 감사님들이나 팀장님들 또는 대학생 형들이랑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많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밤에도 대부분 작업을 하는데 시간을 소비를 했고, 회의가 끝나도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 상 별로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올해에 영상은 내가 직접 나서서 만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올해 홍보팀을 시작 할 때에도 그랬듯이 나는 사진만 찍으려고 왔다. 그래서 인지 군포y에서 따로 영상을 만드는 누나가 왔었다. 이날 원래 나도 같이 영상 만드는 것을 도와야 했지만 나는 다른 사정으로 영상을 같이 만들지 못했.

 그 사정은 마지막 날 프로그램 준비 때문이였다. 내가 평소 학교에서 조명과 음향을 설치하고 조정해왔다. 그런 경험 덕분에 나는 어려운 상황들도 해결해 나갔다.

 이것이 LED차량이다. 이 차량은 이동하면서 영상도 틀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졸지 않도록 음악도 틀어주는 차량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팀에서 음향을 다루는 경험자가 없어서 인지 처음으로 스피커를 터트렸다. 한 순간 이었다. 나는 사실 스피커에 무리가 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얼마 안가서 터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해요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터지고 말았다. 쉬는 시간에 간사님들이 들어가서 고치려고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근데 못 고치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말했다.

 “혹시 제가 한번 만져보면 안될까요?” 나는 안 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번 만져보겠다고 했고, 나는 자세히 잘 살펴보았다. 평소 학교에서 정상적인 스피커가 아닌 반쯤 터진 스피커들을 조정하다 보니, 나에게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경우를 생각해서 스피커 라인부터 해서 전부 살펴보았다. 스피커가 터진 당시에 나는 앞쪽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뭐 때문에 터진건지 몰라 전체적으로 다 살펴 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손길을 거치고 난 스피커는 다시 소리가 나오고 음악도 정상적으로 잘 나왔다. 나는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학교에서 해오던 것들을 밖에서도 쓸 수 있는 기술이여서 너무나도 기뼜다. 나는 절대 마음대로 올리지 마세요! 제가 해 놓은 한계치를 넘으시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 했다. 이런 어려운 일들을 하고 나니 마지막 날 장기자랑 할 때에도 나의 도움을 요청해서 나는 도와드렸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음향 장비들과 마이크를 준비하는데, 조금 놀라웠다. 장비들을 너무 막 쓰고 있었고, 학교에서 하는 동아리 방송부에 그 일원들이 그리웠고, 정말 보고 싶었다.

 뭐 이러저런 일로 스트레스도 받고 화도 났지만, 다 끝나고 밤에는 정말 즐거웠다. 모든 것이 끝나고 아이들은 소등을 한 후, 나는 영상을 준비하러 갔다가 딴 생각도 많이 나고 피곤해서 밖으로 나갔다. 주변을 산책 하다 로드팀 형들과 같이 놀았다. 같이 앉아서 어른들의 간식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뚜렷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또 대학준비는 어떻게 할지 조금 더 고민하게 해주었다. 진지한 얘기도 있었지만 재밌는 이야기도 있었다. 진지하다가도 함께 웃었고, 나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자 즐거운 시간들이였다.

 그런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새벽에 홍보팀에 들어가서 밤샘 작업을 시작 했다. 올해 영상을 내가 만들지 않기 때문인지, 크게 할 건 없었다. 들어 갔을 때 팀장님은 너무 피곤하다며 먼저 들어가서 주무셨고, 군포y 누나랑 나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나는 누나를 그냥 두고 자러 가기 너무 미안했고, 같이 밤을 새었다.

 나의 올해 국토순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예년에 비해서 훨씬 많이 배우고 느끼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국토순례 여서 너무 좋았다. 항상 마지막 날 밤에는 아싸! 오늘 밤만 자고 나면 내일 집에 갈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지며 좋아했지만 올해에는 .... 이렇게 올해도 국토순례가 끝나가는 구나. 너무도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의미있는 시간들이였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였다.

 여러 지역에서 온 간사님들과 이야기도 하고 같이 일도 하며 세상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해주었으며, 나의 시선에서 각 지역 간사님들과 팀장님들이 너무도 존경스러웠고 멋졌다. 간사님들의 열정이 너무도 뜨거웠고, 나에게 멋진 감동도 주었다. 이번 국토순례를 통해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존중하며 공손하게 다가간다면, 그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78일 이였다. 일주일 이라는 긴 시간동안 나에게 너무도 값진 경험을 시켜준 모든 사람에게 고마웠고, 앞으로도 YMCA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리고 중요하게 깨달을 점이 있다. 나는 원래 주변이 산만하고 시끄러우면 집중을 엄청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다해서 혼자서만 하려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번 78일은 함께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배웠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한다는 것, 굉장히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 이였다. 올해 나의 국토순례는 행복했고, 즐거웠으며 아쉬운 점이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폐회식이 끝나고 각 지역으로 헤어질 때.. “조금 더 함께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웠고 고마웠고 감사하는 시간들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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