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의 2번째 날. 아침의 날씨는 매우 흐렸다. 날짜로는 15일 이었던 이 날은 제주도에 비 소식이 있었다. 그래서 인지 날씨는 정말 많이 흐렸다. 이 날 원래 계획은 모슬포 항에서 마라도를 가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비도 오고 안개도 짙어 마라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서귀포시까지 달렸다. 이날 안개도 짙었지만 코스도 도와주지 않았다. 둘째 날 자전거를 조금 무리하게 탔는지 약간의 오르막에도 정말 힘들었다. 평지도 아닌 것이 가파른 오르막도 아닌 그런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자전거를 타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런 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바람도 많이 불었고, 정말 최악의 날씨였다. 힘들지만 약간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쉬지 않고 폐달을 밟았다. 오르막길을 다 오르고 보니 내가 오던 길은 송악산을 오르는 길 이었다. 그 길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서귀포시에 제대로 들어섰다. 그리고 무슨 관광지를 지나 왔는데 사실 자전거에 내려 구경하고 싶거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날씨도 별로였고 몸도 좋지 않아 그냥 밥을 좀 괜찮은 걸 먹고 싶다는 생각 뿐 이었다.

 그렇게 달려 점심시간이 되었다. 가는 길에 칼국수 집이 있어 들어갔다. 평소 면을 좋아하던 나는 밥보다 면이 더 먹고 싶었다. 아마 전날 제대로 못 먹어서 맛있는 것이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들어가서 감자옹심이손칼국수를 시켰다. 감자옹심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일단 시켰다. 제주도에서 새로운 것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마음 이였기 때문에 일단 시켰다. 처음엔 보리밥을 주었다. 보리밥에 물김치를 잘라 고추장에 비벼 먹으라며 주었다.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파 정말 맛있게 먹었다. 고추장이 좀 매웠긴 했지만, 내가 원래 매운 걸 잘 못 먹는 편이어서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태봉고를 다닐 때 제주도 이동학습으로 왔었지만 강정마을은 한번 도 방문한 적이 없어 처음으로 갔다왔다. 강정마을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평소 sns 또는 뉴스를 통해 해군기지건설 반대에 관한 자료는 많이 봤었지만 직접 가서 보는 거와는 많이 달랐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해군기지건설 반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사이에 세월호 노란리본도 그려져 있었다 강정마을을 지나오면서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에 젖어 강정마을에 있는 공원에서 30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강정마을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데 외국인들이 이런 마을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지 참.... 창피하다.

 이후 나는 얼른 슬로우시티 게스트 하우스를 향해 갔다. 천지연 폭포도 들리려 했지만, 천지연 폭포에 도착하기 전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그냥 게스트하우스를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간 시간은 약 5시였고,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의 실내 내부 모습이다. 셋째 날 묵은 이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았는데 이 게스트하우스는 남녀혼숙이라는 점이 첫 여행인 나에겐 조금 신기한 경험 이었고, 말이 안 통했던 나는 그저 친구나 가족과 통화하거나 카톡하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른 전날 게스트하우스에 비해 사람도 다양하게 많이 있었지만 언어가 되지 않아 심심한건 똑같았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음 먹은 것은 정말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국외든 국내든 영어는 어딜가나 쓸데가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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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6시 반쯤에 기상하여 대충 세수만 하고 나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온 나를 반기는 맑은 날씨와 햇살을 받으며 여수 엑스포 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엑스포역 옆에 위치한 여객 터미널에서 나는 8시 30분 배를 탔다. 배 안의 시설은 작은 카페와 뷔페 느낌의 식당이 하나 있었다. 매점은 당연히 있었고, 위층에는 오락실도 있었지만 이용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탔던 날엔 선내 공연이 있었고, 나는 공연을 즐기기 보단 선상에서의 아침을 즐기고 객실로 돌아와 시간을 보냈다.

 13시30분. 배가 제주도 연안에 도착했다. 금방 내릴 거 같아 짐을 챙겼다. 하지만 연안에서 3~40분 가량 머물더니 내리고 난 시간은 14시 30분 이었다. 원래 집에서 짠 계획은 13시 30분에 내려 제주도 연안항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할 계획이었으나 조금 늦게 내리는 바람에 점심을 포기하고 그냥 자전거를 탔다.

 항에서 나와 길을 가는데 ! 어째서! 하필! 내 첫 여행에! 도로공사를 하냐고!!’라는 생각을 하며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전날 밤 국토종주를 했다는 분의 말이 생각났다. “제주도는 길도 별로고 무엇보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타기 힘들고, 자전거 여행에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저는 제주도 종주를 포기했었거든요...” 라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보낸 어떤 관광객 형의 말에 나는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뿌리치고 고등학교 때 제주도 이동학습을 했던 길을 생각하며 자전거를 탔다. 

 하지만 길을 달리면 달릴수록 여수에서 만났던 분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왜냐하면 자전거 도로에 갓길 주차마냥 불법주차가 많아 자전거 여행객들은 어쩔 수 없이 차도로 가야하는 일이 계속 되었다. 짐을 싣고 가던 나는 조금은 불안한 감을 가지고 계속 달렸다. 그래도 중, 고등학교 때부터 자전거 국토순례를 했던 경험이 있고, 평소 아침에 매일 수영을 다녀서 체력적으로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그러다 첫 여행 제주도에서 첫날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화장실을 잠시 갔다 온 사이 가방에 있던 지갑을 털린 것이다. 물론 지갑에는 현금 5만원 정도 있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다른 비상금들은 각각 가방에 분산 되어 있었고, 카드와 보안카드, 면허증 같은 경우는 내 휴대폰 지갑 안에 들어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도 첫 여행에 지갑을 털려서 인지 점심도 잊고 약 1시간 가량을 넋 놓고 그냥 길 따라 자전거를 달렸다. 사실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화장실을 다녀온 후 약 20km를 더 달리다 배가 너무 고파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지갑을 찾다 그때서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눈치를 챈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넋을 놓고 달려서 인지 주변 사진은 찍지 못했다.

이후 일단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가족들에게 알리고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 아직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할 곳이 많고 방문하려고 하는 곳이 많이 있는데지갑 잃어버린 걸로 이렇게 넋 놓고 있으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에 정신차리고 다시 달렸다.

 식당에서 밥을 못 먹어서 인지 너무 배가 고팠다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오늘은 원래 텐트치고 야영을 할 계획이었다그래서 지갑은 잃어버렸지만 여행을 즐기기 위해 편의점에서 김밥과 라면 그리고 음료수를 사서 자려고 했던 수월봉으로 향했다거리뷰 상에서의 수월봉은 정자가 있어 텐트를 치고 잠을 잘 수 있을 거 같았다그래서 조금 더 힘내 달렸다

 수월봉이 아무래도 이다보니 올라가는 경사가 굉장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정말 각도가 화려했다. 자전거에 짐도 달려 있어서 무게 중심이 뒤로 가 있는 상황에서 정말 타기 힘들었다. 그래도 거기만 올라가면 해 지는 노을도 보고 좀 힐링을 하면서 잘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천천히 한발 한발 폐달을 밝고 올랐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 나는 뿌듯함보다 멘붕을 먼저 받았다. 올라갔더니 수월봉은 공사중 이었고, 잘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일단 지갑을 잃어버렸던 충격이 있어서 인지 정신 차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수월봉에서 차귀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나는 다음 날 가려 했던 모슬포 항까지 20km를 이 날 추가적으로 더 달렸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 배에서 내리는 시간도 1시간이 더뎌지고 길도 별로 안 좋고 더군다나 잠시의 실수에 지갑도 잃어버리고, 원래 야영 하려고 했던 곳은 공사중이고, 굉장히 멘붕의 연속인 하루였다. 추가적으로 더 달리게 된 20km의 거리는 너무 지처버린 나한테 굉장히 먼 거리였다. 평소 상태였다면 20km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였으나, 너무 지쳐있던 나에게는 굉장히 먼 거리였다.해가 지는 모습이다. 정말 이뻤다. 멘붕이 온 나에게 따뜻한 위로같았다.

 하늘은 이런 나에게 보상 해주 듯 멋진 야경을 보여주었고, 밤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 모슬포 항 주변에는 해수욕장과 함께 야영장이 있었는데, 나는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해도 떨어진 후였고, 혼자 텐트 치기엔 너무 정신적으로 힘들어 야영장 주변에 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둘째 날이 흘러 갔다. 제주도에서 다녀오고 5일이 지난 23일 제주 경찰서로부터 우편물을 받았는데, 그 안에는 나의 신분증과 지갑이 있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고 내 지갑을 찾아준 제주서부경찰서 생활질서계에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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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지 않는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졸업 이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지내며,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5월 연휴기간에 아빠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말씀 하셨고, 나는 아무래도 혼자 하는 첫 여행이다보니 두려움 반 설렘 반 이었다. 첫 여행이어서 정말 꼼꼼하게 짰다. 코스를 짜고 저녁은 어떻게 먹을건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전부 계산하여 준비했다. 13일부터 18일까지의 5박6일의 여행이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는 것만이 아니라 중간엔 야영도 할 계획으로 텐트와 침낭도 들고 갔다.

준비 기간으로 부터 1주일이 지나고, 13일 오후에 짐들을 가지고 마산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마산에서 여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여수로 가는 이유는 작년부터 부산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가 없어졌다. 그래서 여수 엑스포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엔 배 자리가 없었는데 여수 엑스포 여객선 터미널에는 자리가 굉장히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수로 가는 것이다.













 여수에 도착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내가 이번에 묵었던 곳은 24guesthouse 라는 곳 이었는데 원래는 엑스포 안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려고 했으나 여수엑스포게스트하우스는 예약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엑스포 맞은편에 있는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게 되었다.

 내가 자는 객실은 4인 남성 도미토리룸 이었다. 첫 여행이다보니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룸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서 지냈던 터라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처음 내가 들어갔을 땐 방에 아무도 없었다.

 2층 침대가 2개가 있고 각 방마다 와이파이(WIFI) 가 있어서 굉장히 편안했다. 문 앞에 있는 침대 2층이 내 자리였다. 괜찮은 시설에 카운터에 계시는 직원분의 친절함도 별 5개 만점을 주고 싶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짐을 대충 풀고 엄마와 통화 후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은 엑스포 주변으로 식당을 검색했고, 혼밥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많은 식당들이 문 닫은 곳이 많았으나 다른 블로그에 올려져 있던 식당은 다행히도 열려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는데 블로그 평에서는 음식이 많이 짜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조금 짜게 먹는 편이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일반 백반을 시켰는데 김치찌개와 함께 미역국이랑 여러 밑반찬이 나왔다. 다른 블로그의 평 대로 정말 짰다. 매운 걸 잘 못먹는 나에겐 정말 맵고, 짜서 힘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다보니 맛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며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랑 후식을 좀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여행 첫날부터 돈을 많이 쓰는 건 아닐 거 같다는 생각에 그냥 밥만 먹고 숙소로 들어왔다. 들어와서도 딱히 할 게 없던 나는 야경 구경겸 자전거와 카메라를 들고 엑스포로 나갔다. 엑스포로 나갔더니 직원이 엑스포 내에서는 이륜차는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였고, 나는 할 수 없이 엑스포 앞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카메라만 들고 들어갔다.




 너무 어두운 밤이여서 그런지 사진 찍기가 너무 힘들었다. 가로등이 있고 천장에 전광판이 있어 밝다고 하지만 사진을 찍기엔 내 실력에 한계가 조금 있는 거 같다. 

 엑스포 안에는 대부분 가족 단위로 왔거나 연인들 밖에 없었다. 밤이다 보니 뭐 딱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생각난 것이 '엑스포 안 이륜차&자전거 통행금지 이면 나는 다음날 아침에 어떻게 엑스포에서 배를 타야하지?'하는 생각에 근처 직원에게 물었고, 자전거는 엑스포를 돌아서 터미널로 가는 길이 있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길을 빨리 못 찾을 수 있을 위험에 대비해 저녁에 직원이 안내해 준 길을 먼저 가보았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내가 들어오고 얼마 안 있어 다른 사람들도 들어왔다. 다들 여수를 한바퀴 돌아보고 온 사람들이어서 나는 뭔가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나보고도 어디가냐고 물어봐서 제주도에 자전거 타러 간다고 했더니, 어떤 한분이 자기도 제주도 빼고 국토종주 했는데, 제주도 자전거 길 평이 별로 좋지 않아 제주도 가려다 포기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나 보고는 어디 가봤냐고 묻길래, 아직 제대로 돌아본 곳은 없지만 낙동강 자전거 길을 타본 적은 있다고 얘기하며, 자전거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었다.

 낯가림이 있어 먼저 대화 거는 것을 잘 못한다. 그런데 먼저 말을 걸어줘 너무 고마웠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어떤 코스는 힘들고 어떤 코스는 편한지 어떻게 가면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지 등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나는 먼저 잠을 청하기로 하고 했다. 그러고 하나 둘 다들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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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올 여름에도 빠지지 않고 국토순례에 다녀왔다. 올해로 5번째 다녀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참여 했던 자전거 국토순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 3번은 자전거를 탔고, 작년과 올해에는 영상과 사진에 취미가 생겨 홍보팀으로 참여를 했다. 작년의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작년에는 사진을 찍고 실전 경험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아직도 나는 한참이나 멀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계기였으며, 또한 약간의 창피함이 있었다. 올해도 사실 조금 자신이 없어서 사진만 찍고 영상은 내가 만들지 않기로 하고 홍보팀에 참여했다.

 올해에는 부산에서 출발을 했다. 첫날은 다 같이 강당에 모여서 각 지역별 소개와 실무자들과 각 팀들을 소개 하는 시간을 보냈다. 올해 국토순례도 이렇게 시작 되었다. 올해에도 역시 자전거는 타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 사진을 찍으니 하루에 1000~2000장정도 사진을 찍었다. 작년처럼 막 연사로 찍는 것이 아니라 1장도 신중하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국토순례 기간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날씨가 정말 맑았다. 날씨가 맑은 만큼 정말로 더웠다.

 사실 올해 국토순례 사진은 조금 더 사진수준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 컸다. 왜냐하면 3학년 때 하는 졸업앨범을 나도 참여하거나 기회가 된다면 내가 맡아서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방학 때 국토순례에 다시 참여하여 조금 더 멋지고 괜찮은 사진들을 찍으며 연습을 하고 싶었다.

 실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사진을 조금 더 잘 찍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배들을 가르치려고 사진에 관해 공부를 조금 했더니 확실히 실력이 늘어난 것 같다. 그리고 올해는 사진 찍을 때 절대 연사를 하지 않고 찍기 때문에 더 잘 나온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을 매일 저녁 초점이 흐린 사진이나 각도가 어색하거나 이상한 사진들을 지우는 작업을 했다. 저녁마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잘못 된 부분을 계속 보는 것이 큰 공부가 되는 것 같았다.

 국토순례에서 밤마다 실무자 회의를 한다. 나는 이 회의가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 하는 회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낮에는 각각 팀별로 움직이기 때문에 얼굴을 볼 시간이 잘 없다. 그래서 인지 나는 이 회의 시간이 특별하게 느꼈고, 좋은 말들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낯가림이 심했다. 낯가림이 심해서 인지 작년에는 홍보팀과 마산지역 아이들, 그리고 나에게 먼저 말 걸어주는 사람 이외엔 소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용기를 내어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본다면 로드팀에 동아대, 건양대 싸이클팀 형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매년 있는 의료지원팀에 간호학과 누나들과도 친해지고 싶었다. 형들하고는 자연스럽게 같이 이야기도 하고, 도와드릴 거 있으면 도와드리면서 친해져 갔다.

 간호과 누나들에게는 솔직히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근데 친해지고는 싶었다. 누나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갔다고 하기 보단 어쩌다 보니 말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선 제일 적극적으로 다가갔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잘 몰랐었다. 나는 그저 조금 더 친절하게 공손하게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했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싫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진심을 가지고 계속 다가갔다.

 나는 사진 촬영을 할 때 여러 곳에 올라갔다. 육교나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었다. 갓길에 차를 세워 사진을 찍을 때가 많았는데 딱히 올라설 때가 없을 땐 차 지붕위에도 올라갔다. 가끔은 차 안에서 사진을 찍는데 차 안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차문을 열고 찍기도 했다.

 매일 사진을 찍고, 밤에는 작업을 하고, 작업을 하다 시간이 남으면 감사님들이나 팀장님들 또는 대학생 형들이랑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많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밤에도 대부분 작업을 하는데 시간을 소비를 했고, 회의가 끝나도 마무리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 상 별로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올해에 영상은 내가 직접 나서서 만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올해 홍보팀을 시작 할 때에도 그랬듯이 나는 사진만 찍으려고 왔다. 그래서 인지 군포y에서 따로 영상을 만드는 누나가 왔었다. 이날 원래 나도 같이 영상 만드는 것을 도와야 했지만 나는 다른 사정으로 영상을 같이 만들지 못했.

 그 사정은 마지막 날 프로그램 준비 때문이였다. 내가 평소 학교에서 조명과 음향을 설치하고 조정해왔다. 그런 경험 덕분에 나는 어려운 상황들도 해결해 나갔다.

 이것이 LED차량이다. 이 차량은 이동하면서 영상도 틀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졸지 않도록 음악도 틀어주는 차량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팀에서 음향을 다루는 경험자가 없어서 인지 처음으로 스피커를 터트렸다. 한 순간 이었다. 나는 사실 스피커에 무리가 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얼마 안가서 터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해요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터지고 말았다. 쉬는 시간에 간사님들이 들어가서 고치려고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근데 못 고치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말했다.

 “혹시 제가 한번 만져보면 안될까요?” 나는 안 될 가능성이 있지만 한번 만져보겠다고 했고, 나는 자세히 잘 살펴보았다. 평소 학교에서 정상적인 스피커가 아닌 반쯤 터진 스피커들을 조정하다 보니, 나에게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경우를 생각해서 스피커 라인부터 해서 전부 살펴보았다. 스피커가 터진 당시에 나는 앞쪽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뭐 때문에 터진건지 몰라 전체적으로 다 살펴 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손길을 거치고 난 스피커는 다시 소리가 나오고 음악도 정상적으로 잘 나왔다. 나는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학교에서 해오던 것들을 밖에서도 쓸 수 있는 기술이여서 너무나도 기뼜다. 나는 절대 마음대로 올리지 마세요! 제가 해 놓은 한계치를 넘으시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 했다. 이런 어려운 일들을 하고 나니 마지막 날 장기자랑 할 때에도 나의 도움을 요청해서 나는 도와드렸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음향 장비들과 마이크를 준비하는데, 조금 놀라웠다. 장비들을 너무 막 쓰고 있었고, 학교에서 하는 동아리 방송부에 그 일원들이 그리웠고, 정말 보고 싶었다.

 뭐 이러저런 일로 스트레스도 받고 화도 났지만, 다 끝나고 밤에는 정말 즐거웠다. 모든 것이 끝나고 아이들은 소등을 한 후, 나는 영상을 준비하러 갔다가 딴 생각도 많이 나고 피곤해서 밖으로 나갔다. 주변을 산책 하다 로드팀 형들과 같이 놀았다. 같이 앉아서 어른들의 간식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뚜렷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또 대학준비는 어떻게 할지 조금 더 고민하게 해주었다. 진지한 얘기도 있었지만 재밌는 이야기도 있었다. 진지하다가도 함께 웃었고, 나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자 즐거운 시간들이였다.

 그런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새벽에 홍보팀에 들어가서 밤샘 작업을 시작 했다. 올해 영상을 내가 만들지 않기 때문인지, 크게 할 건 없었다. 들어 갔을 때 팀장님은 너무 피곤하다며 먼저 들어가서 주무셨고, 군포y 누나랑 나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나는 누나를 그냥 두고 자러 가기 너무 미안했고, 같이 밤을 새었다.

 나의 올해 국토순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예년에 비해서 훨씬 많이 배우고 느끼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국토순례 여서 너무 좋았다. 항상 마지막 날 밤에는 아싸! 오늘 밤만 자고 나면 내일 집에 갈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지며 좋아했지만 올해에는 .... 이렇게 올해도 국토순례가 끝나가는 구나. 너무도 아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의미있는 시간들이였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였다.

 여러 지역에서 온 간사님들과 이야기도 하고 같이 일도 하며 세상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해주었으며, 나의 시선에서 각 지역 간사님들과 팀장님들이 너무도 존경스러웠고 멋졌다. 간사님들의 열정이 너무도 뜨거웠고, 나에게 멋진 감동도 주었다. 이번 국토순례를 통해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존중하며 공손하게 다가간다면, 그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78일 이였다. 일주일 이라는 긴 시간동안 나에게 너무도 값진 경험을 시켜준 모든 사람에게 고마웠고, 앞으로도 YMCA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리고 중요하게 깨달을 점이 있다. 나는 원래 주변이 산만하고 시끄러우면 집중을 엄청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다해서 혼자서만 하려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번 78일은 함께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배웠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한다는 것, 굉장히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 이였다. 올해 나의 국토순례는 행복했고, 즐거웠으며 아쉬운 점이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폐회식이 끝나고 각 지역으로 헤어질 때.. “조금 더 함께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웠고 고마웠고 감사하는 시간들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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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에 가서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여행 하는 날 이였습니다. 이 날은 시간 맞춰 나갈 필요 없이 우리가 개획을 세워서 놀러 가면 되는 것 이였고, 우리는 치앙마이 대학에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호텔에서 치앙마이 대학까지는 조금 올라가야 하는데 밤 보다 많이 덥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걸었고, 우리나라와 달리 유치원 때부터 대학가서까지 교복을 입는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비해서 여자애들이나 남자애들이 교복이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교복을 입었을 때, 그렇게 이쁘거나 멋지다고 생각 안했는데 정말 잘 어울렸었고, 우리가 갔을 때는 졸업시즌 이였는지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학사모를 쓰고 치앙마이 대학 교문 앞에서 사진을 찍는 학생이 있었고, 우리는 기다렸다가 다 찍고 나서 바로 찍었습니다. 나는 태봉고에서 방송부를 하고 있었는데, 방송부를 하다보니 각종 음향장비와 조명기계를 만지게 되었습니다. 사진과 영상에 관심이 깊어졌고, 그래서 편집도 배우게 되었으며, 포토샵도 배워가는 중 입니다.

     그러고 있었는데, 아빠가 알고 지내시는 그 분이 치앙마이에 스튜디오를 가지고 계신다며 마지막 날 가기전에 보여주셨고, 나는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게 지금 나의 현 꿈과 비슷한 일이였는데, 그분께서 제안 하신 일이 학교를 휴학을 하고 치앙마이로 유학을 오라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보통 학교에서 쓰는 캠코더 와는 차원이 다른 정말 방송에서만 보는 그런 카메라들이 많았고, 정말 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보다 태봉고를 계속 다니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1년 다니며 많은 방황을 했고, 방송부에서도 내가 해보고 싶다고 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2학년 때 계획이 내 작품을 만드는 것 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1년 더 다니면서 생각해보고 고3이 될때 정말 유학을 갈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지금은 생각을 해보는 중입니다.

     치앙마이 대학이 나의 모교가 될지도 모른다는 큰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직 영어도 잘 안되고, 하지만 나는 노력을 해보려 한다. 지금은 잘 안되지만, 노력 해보려 합니다. 치앙마이 대학 걸어다려 보았습니다. 정말 넓었고, 걷는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은 얼마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치앙마이 대학을 돌고 하면서 영어공부를 해야 겠다는 다짐은 생겼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은 있지만 그게 쉽게 다가가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직 많은 것을 잘하지 못하고, 카메라나 영상 아직 구도 조차 잘 맞추지 못합니다. 편집도 잘 못하고, 그저 학교 숙제로 Ucc를 만들어 본 것과 선배들의 촬영을 도와줬던 것 뿐 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짐을 한다. 내 작품을 2~3개 정도 만들어 볼 것이다. 그것이 나의 다짐이다. 그리고 유학은 내 실력이 된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갈까 싶습니다.

(밑에는 치앙마이 대학에서)

여기 앞이 교문 입니다. 잘하면 모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쁜 꽃들이 정말 많았고, 걸으면 기분이 좋은 정도 였습니다.

여기는 어딜가나 코끼리가 정말 많았었고, 치앙마이에 코끼리가 정말 많은 거 같았습니다.

이 나무를 보고 있으니 밑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기 풍선들고 있는 여자 뒤에 있는 건물 무엇으로 보이세요??

 저게 사실 화장실이래요. 저도 알고 깜짝 놀랬습니다. 어떻게 저런 비주얼이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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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를 다 타고 고산 족 마을에 드렸던 것이 앞의 글 이였구요. 이번 글은 그 뒤를 이어서 고산 족 마을에서 숲을 지나 폭포로 가는 것과 뗏목을 타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고산 족 마을에서 출발해서 폭포가 있는 계곡까지 가는 길이 정말 이뻤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빌딩의 불빛이 있다면 여기는 그냥 숲 그 자체 였습니다. 그저 자연경관이 이뻤고, 겨울에 갔지만 태국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느끼엔 그저 여름! 더웟습니다. 

한국에도 있을 만한 그저 숲길이지만 한국에는 숲보단 빌딩이 더 많더라고요

     이런 길을 계속 걷다보니 왠 계단이 있었는데 정말 많았습니다. 오르는게 아니라 내려가는 계단이였으나, 나중에 올라갈때는 어떻게 올라갈까 싶었습니다. 계단이 보통 일반적인 계단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말이 통해도 낯가림을 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자주 않나왔고, 그저 형 하고만 이야기를 하면서 왔습니다.

                     정말 의외로 계단이 많았고 다 내려왔을때!!

     요런 느낌!! 

     저기 앞에 저렇게 서 있으면 물보라가 튀어서 정말 시원했습니다. 물에 들어가도 된다고 했으나 갈아 입을 옷을 하나만 챙겨 왔고, 더군다나 고등학생이랑 대학생이랑 머하고 노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실 배도 너무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들었습니다. 태국 계절로 여름에는 이 폭포에 자주와서 많이 놀고 간다고 했습니다.

     폭포 옆으로 가면 나무 집? 이 있는데 여기에 간식가계가 있었습니다. 

     간식을 사고 휴식을 취하려면 저렇게 대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조금 무서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뒤에 있는 많은 사람 때문에 먼저 건너갔고, 다리가 신기하기도 했고, 어떻게 이런걸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 나라 사람들의 손재주가 대단했던 거 같습니다. 

     나중에는 저보다시피 저런 여유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맨 오른쪽 밑에 있는 사진은 형이 태국판 스윙칩을 사서 먹길래, 저도 먹으려고 뒤에 섰더니 저렇게 찍혔네요. 정말 저렇게 누워 있는데, 불안하기도 했고, 오히려 시원해서 땀이 식어서 좋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나니 다음 장소로 옮겼습니다. 다시 차가 있는 고산 족 마을 근처로 갔고, 우리는 뗏목을 타러 갔습니다.

     뗏목을 타는데 원래 4명이 탈 수 있는데 저희 가족이 딱 4명이라 4명 같이 타겠구나 생각 했는데, 형이랑 저랑 태우고 부모님들끼리 태우고 해서 따로 태우더 라고요. 정말 탈때 물이 어후 여름이라도 차갑긴 하더라고요. 아쉬웠던게 카메라나 전자제품을 들고 타면 물에 젖는다고 놔두고 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때 개인 사진은 없고, 그 체험 하러가면 현지인들이 사진을 찍어서 우리 사진으로 액자를 팔아요. 그래서 그 사진 카메라로 다시 찍어서 올립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만들어 줍니다. 액자는 코끼리 똥으로 만든 액자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30분 타는 거라 해서 중간에는 정말 재밌게 타 보려고 저희 둘이서 온갖 장난을 다 쳤습니다. 장난을 치다가 거의 다와서 제가 빠져버렸습니다. 형이 자꾸 약 올리길래 도착해서 빠트렸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사람은 저랑 저희 형 말고는 없더라고요. 정말 재밌기 위해서 열심히 배도 흔들고 손바닥 밀어치기도 해보고, 갖가지 놀이를 해보았던 거 같습니다.

     형이랑 그렇게 재밌게 논 것은 정말 오랜만 이였고, 형제의 우애? 를 높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거 같네요.


   다음편은 가이드 없이 저희끼리 태국에 돌아다녔던 날이 있는데 그날 중에서 치앙마이 대학과 도이스텝에 대하여 쓰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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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2번째 날 아침엔 치앙마이 트레킹 이라고 해서 코끼리도 타고 대나무 뗏목 래프팅도 하며, 고산족 마을에 방문을 한다. 오늘은 코끼리 트레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도 있었는데 총 4팀 이였다. 2팀은 중국인이였고, 다른 우리를 포함한 2팀은 한국인이였다. 해외에 와서 한국 사람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였지만, 의외로 치앙마이에 한국사람들이 많았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가족을 포함한 4팀은 가이드의 영어로 말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코끼리를 먼저 타러갔다. 사실 영어로 말하는데 살짜살짝 들리는 영어단어를 제외하곤 알아 듣기가 힘들었다. 이때 사실은 영어공부를 진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해서 짐을 놔두고 내렸다. 

     도착했을 때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고, 특히 영국인이 더 많게 느껴졌다. 우리는 도착해서 우리가 탈때까지 기다렸다.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형이랑 같이 탔다.

     형이랑 함께 타고 엄마랑 아빠랑 탔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타는 거라서 약간 무섭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코끼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게 출발 하기전에 코끼리 먹이를 사는데, 코끼리를 타고 있으면 코끼리가 먹을거를 탈라고 우리에게 코를 내민다. 코를 내밀면, 그때 코에 맞춰서 주면 받아서 먹는다. 이걸 30분정도 탄다고 했는데 사료는 몇개 안들었고, 그런데 코끼리는 자꾸 달라고 그랬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달라고 해도 안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 코끼리가 코로 바람을 내뿜는데 정말 냄세가 지독했다. 

     그렇게 가다보니 중간중간에 코끼리 먹이를 살수있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달라할때 그대로 안주고 남기면서 갔더니 먹이를 자주 사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리에 비해 엄마랑 아빠는 계속 먹이를 사서 줬다. 엄마는 아마 그 냄새가 싫어서 게속 사서 주자고 했을 것이다. 불쌍하긴 하지만 우리는 코를 내밀면 머리를 밟앗다. 머리를 밟으니 정말로 코를 내렸다. 

    우리는 코끼리를 타면서 이야기도 하면서 탔다. 우리 코끼리는 먹이를 주지 않았더니 정말 천천히 여유롭게 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라면 여기서는 아파트만큼 큰 나무나 산을 보았다. 그렇게 풍경을 감상하며 한바퀴를 돌았고, 지루할것 같았지만 생각만큼 지루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코끼리가 자꾸 밥 달라고 코를 올려서, 코 내린다고 지루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뒤에 앉아 있었고 형은 거의 다 돌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때즘 코끼리 목에 올라탔다. 나는 무섭고 떨어질 것 같아서 올라타지 않았다. 

     그 다음 코스는 고산족 마을 이였는데 고산족 마을에서는 베짜기를 해서 관광객들에게 머플러를 팔거나 했다. 그러나 아무도 사지 않았다.

(이것이 베짜기)

     그렇게 고산 족 마을에서 폭포로 걸어 올라가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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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학교는 3학년 졸업식이 1월에 있는데, 졸업식과 방학식을 같이 합니다. 그래서 방학을 하고 12일 일요일에 밤 비행기를 타고 태국 치앙마이로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중학교때 일본을 갈때와는 달리 기대에 가득 차 있는 상태였습니다. 6시간의 긴 시간동안 잠도 자고 폰도 보고 간식도 묵고 했습니다. 저희는 제주항공 비행기로 갔는데, 제주항공의 간식은 머핀과 삼각김밥, 음료 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긴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에 도착 했을 때 현지시간은 11시를 넘어가는 시각 이였습니다. 한국과는 2시간 차이가 있는 나라였고, 치앙마이에 아빠와 친분이 있는 분이 여행코스를 추천도 해주고 호텔까지 바래다 줬습니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서 방을 둘러보고, 부모님과는 층이 달랐고, 아침에 만나기로 하며 씻고 잤습니다.

 13일 아침 저희는 아빠와 친분이 있는 그 분께서 태워주셔서 이리저리 소개 받으면서 차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치앙마이 현지에 있는 산에 오르게 되었는데, 옆에 보이는 지도를 따라 제일 밑에서 부터 차를 타고 올랐습니다. 올라가다가 중간에 탁 트인 곳이 있었고, 거기 잠시 내려서풍경을 감상하며 사진촬영도 하고 즐겁게 올라갔습니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트렁크에 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데 태국은 허용이 되었고, 저는 트렁크에 타고 거기 누웠습니다. 타고 가면서 멀미도 나긴 했지만, 올라가는 동안의 풍경이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사진도 찍고, 멍 때리며 감상도 하고 현지인 주민 또는 외국인 관광객과 인사도 했습니다.


 

중간에 오르다가 본 풍경

저희 말고도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있었습니다.

카메라 들고 서 있는 것이 접니다.

산 위에 학교가 있었습니다.

학교 주변에 있는 식물들1

식물2

식물3

식물4

공부를 하고있는 현지 아이들

해발 1300m를 넘는 이곳을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더라구요.


 저는 계속 트렁크에 타서 풍경을 찍었고, 올라갔다 내려오니 점심시간이였습니다. 저희 태국에서 첫 밥은 백화점 푸드코너 였습니다.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밥 알겡이가 한국과 달랐고, 별로 내키지 않는 밥이였습니다. 그래도 먹었고, 오후에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구경을 하면서 서장에서는 과일도 사 먹고 했습니다. 걸어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고, 가족들이 모두가 동의를 해서 자전거를 타고 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걸었습니다.

형과의 추억 형보다 제가 더 크죠;;

사원1

엄마를 찍는데 저도 나왔네요

사원2

시장에서 파파야와 망고를 사 먹었습니다.

사원3

사원3

사원3에 있던 종

정말 기엽지 않나요? 

대부분 다 사원 이여서 별로 재밌지는 않았고, 다리가 아프고 사실 좀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시장에서 과일을 샀는데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자전거를 타고, 호텔까지 이동했습니다. 호텔에 과일을 두고 시간이 좀 있어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우리가 아까 헤어졌던 분이 저녁을 먹으면서 공연을 보자고 하셨고, 쿰 깐똑 쇼라는 태국 전통 춤을 보며 밥을 먹었습니다. 바을 먹고, 공연을 보고, 공연하신 분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기념촬영


태국 전통춤 영상입니다.

사진을 연사 한거를 이어서 붙인거라 끝기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늦은시간에도 데리러 오셔서 저희를 호텔까지 감사히 태워 주셨습니다. 첫날 여행기는 이렇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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