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동안 정말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그저 적응하는 기간. 어떻게 보면 이 기간이 가장 중요할 수 있지만, 나는 이 기간에 그저 폰으로 게임만을 즐겼다. 아무것도 안한다고 잔소리 하거나 챙기는 사람도 없다. 

그저 밥 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씻고 싶을 때 씻었다. 그래도 일어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어서 그 시간에 일어나려고 노력중이다. 한국과 1시간 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에 시차적응도 필요했다. 


처음 일주일은 굉장히 의욕도 넘치고 블로그 글도 열심히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각했던 약속들은 자연스레 잊혀져 갔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려 소통하고 싶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반복적으로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졌다. 우울한 감정을 남들에게 많이 알리는 편이 아니며, 굳이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있을 땐 웃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많이 웃으려고 했고, 항상 웃고 있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나'였다. 우울해도 한국에 지낼 때처럼 친한 친구와 연락을 하면 괜찮을 줄 알았고, 평소 연락 안하던 애들과도 연락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과 연락을 하면 할 수록 계속 한국이 생각났고, "내가 여길 도대체 왜 온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약간에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을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러다 나보다 먼저 다녀온 꿈봉 2기 선배(선배지만 나랑 동갑이라 그냥 친구하기로 함.)와 연락을 하며, 조금 씩 회복했다. 평소 많이 힘들 땐 친구와 비속어도 섞어가며, 거친 표현으로 이야기 하면 조금은 마음이 풀어졌었다. 

하지만 여기 처음 오기 전 거친 표현을 쓰지 말자고 했었고, 그래서 인지 조금 더 쌓이는 게 많았다. 처음에 한국에 있을 땐 "남자 단원은 너 하나야" 라는 이야기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는 알아서 잘 풀어낼거고, 다 참아낼 거다."하는 생각만했지 남자 단원이 나 혼자고 그로 인해 우울해 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낮 시간에는 거의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았고, 그래서 더욱 더 괜찮을 거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감정을 진지하게 털어놓고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 이었다. 낯선 땅에서 역시 혼자 버티는 건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연락한 것이 꿈봉 2기선배 였고,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냥 책이나 읽어라, 책 읽으면 시간 괜찮게 지나간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읽지 않던 책이 과연 여기서 읽어질까 생각했지만, 휴대폰과 아이패드를 한쪽에 치워놓고 책을 폈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책은 총 3권 '언틸유어마인' 이라는 미스테리 소설책과, '금요일에 돌아와요' 라는 세월호 관련 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제주도로 혼자 자전거 여행을 떠났을 때 건축학개론 촬영지 서연의 집에서 산 '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이라는 책을 가지고 왔다. 

책은 우선 '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부터 읽었다. 그러다가 블로그에 짧게나마 독후감이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우울하게 보내던 시간엔 책을 보고 있다. 다시 우울해지고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분명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감성적일 때가 많은 난 분명 많이 우울해 할 것이고, 남들에게 들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우울하냐고 힘드냐고 물어도 나는 괜찮다고 대답할거고 하루하루가 즐겁고 재밌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다 정말 마음을 여는 순간이 오면 어떤 점이 힘들고, 이런 점에서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며 다 털어놓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점들을 이해 못할수도 있고 마음에 안들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치지 않을 생각이고, 나 혼자 스트레스를 풀고 무기력함을 이겨내며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적응 1달동안은 어떻게 잘 적응한 거 같다. 

일단 기계들을 내려놓고, 책을 잡았다는 것에 만족하며, 책도 읽어서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한국에서 한 다짐들 중 가장 큰 것은 매일은 힘들 거 같다는 생각에 매주 블로그에 글 1편은 쓰겠다는 목표가 있다. 꼭 내가 이 목표를 잘 이루어 냈으면 하는 혼자만의 작은 바램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이나 이유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남들이 보기엔 굉장히 답답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이나 이유는 지내면서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필리핀에서 우울은 내가 성장하는데 밑거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6개월 뒤에 나의 모습은 어떨까......?


Posted by 감성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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