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네가 자전거 타고 하늘나라로 가게 될 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고...씩씩하게 집을 나섰던 그날,
엄마, 아빠에게 사고 소식을 전해 준 그날로부터 100일 지났구나

그날 저녁 때,  네가 집을 나서기 전에 전화로 들었던
조금 들떠고 씩씩했던 목소리가 마지막이 되었구나

아빠는 그날 며칠 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너 한테 그말을 하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되겠구나
아빠가 그날 그 말을 했으면 어쩌면 네가 라이딩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아빠가 가슴 아파했던 일들은 그냥 마음이 아픈 일이었는데...
아빠는 너를 보내고 나서야...
세상엔 진짜로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끼는 슬픔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구나
정말 마음이 아프면 명치 끝에 참기 힘든 통증이 온다는 걸 처음 알았구나

오늘 YMCA에 건모랑 승현이가 
다녀갔는데...
네가 살아 있었다면 그 녀석들과 함께 어울려 나타났었겠지?
아빠는 이 녀석들을 만날 수가 없구나
오늘 말고 다른 날... 다시 오면 꼭 법 사주겠다고...그때 같이 밥 먹자고 전해달라 했다.

아들, 아빠는 언제쯤 널 위해
곱지 않은 투박한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을까?

Posted by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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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31일에 태어 난 나는 하루 밤 자고 두 살이 되었어. 
그렇지만 돌 잔치는 만 1년이 지나고 1998년 12월 31일에 하는게 당연하잖아. 

돌 잔치는 집에서 했어. 그땐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내 돌 잔치 때는 나 보다 세 살 많은 형이 더 좋아했던 것 같아.
외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돌 잔치 한 복을 형과 내가 똑같이 맞춰 입고 집(교방 주공아파트)에서 돌 잔치를 했어. 과일 같은 걸 상에 잔뜩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어.


그때도 돌 잡이를 했었는데, 엄마, 아빠의 의도대로 '실 타래'를 잡았던 것 같아. 내가 돌이 되기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모두들 장수를 상징하는 '실 타래'를 잡기를 바랬던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부모님의 바람대로 되지 않아서 너무 미안하고 속상해.

첫 돌 무렵에 당시 마산YMCA가 있던 양덕 1동에 있는 '양덕 사진관'에서 돌 사진을 찍었어. 덩치가 산 만해진 청소년기부터 나를 만난 친구들은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 나는 돌 사진 모델이었어. 이 사진관에서 돌 사진을 찍고나서 한 달 쯤 후에 사진관 사장님이 내 돌 사진을 브로마이드(A1) 수준으로 확대해서 전시해둔거야. 

그 땐 지금과 달리 양복점이나 사진관 같은 곳에는 좀 촌스러운 '전시 부스'가 있었어. 길 가는 사람들이 모두 디스플레이 된 옷이나 사진을 볼 수 있도록 바깥을 향해 전시가 되어 있었지. 내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어 양덕 사진관이 폐업 할 때까지 전시되어 있었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고모를 비롯해 우리 가족들은 일부러 그 사진을 보러 양덕 사진관을 갔었어. 그땐 마산YMCA 실무자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 사진관 근처에 있었는데... 모두들 지나가면서 내 사진을 보고 한 마디씩 칭찬을 해줬어.

"건호 정말 귀엽게 생겼다고"

바로 이 사진이 양덕 사진관에 전시되어 있던 사진이야. 어찌보면 내가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첫 돌 무렵부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스물 두살 무렵에 나도 사진 촬영 감독이 되어서 1년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의 가족 사진과 리마인드웨딩 사진을 찍어줬었거든. 

지금 우리집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들도 그 때 CH스튜디오에 근무할 때 찍은 사진이고, 사실 가족, 친구들과 작별할 때 그 영정 사진도 그때 찍은 사진에서 잘라냈거든. 

내가 사진 촬영 감독으로 삶을 꿈꾸게 된 사연을 나중에 따라 말해드릴께요. 아무튼 여러 분이 상상하시는 것보다 어린시절 저는 훨씬 귀여웠답니다. 아빠는 '하얀 달마시안 모자'를 쓴 제 사진이 가장 귀엽게 나왔다고 하지요.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태봉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방송부원이 되면서 부터였어. 태봉고에는 내가 좋아하는 윤이 형이 두 명 있었어. 어릴 때부터 같은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YMCA 캠프도 많이 같이 다녔던 윤이 형과 YMCA 이사님 아들 윤이 형인데... 둘 다 방송부의 리더였고...내가 닮고 싶은 형들이었어.(뜻대로 잘 안 되기는 했지만...)

아무튼 태봉고에 다니면서 방송부원으로 학교 행사 때 이런저런 촬영을 하게 되었고, 2학 년 때는 마을 어른신 '장수 사진 촬영 프로젝트'에 참가했어. 그 무렵부터 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에서도 사진과 영상 편집을 하게 되었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부산에 있는 대학 한 군데와 구미에 있는 대학 한 군데에 원서를 넣었는데, 구미에 있는 대학에만 합력했어. 엄마, 아빠와 함께 구미에 있는 그 대학을 보러 직접 갔었는데 기대보다 너무 교육환경이 열악해서 좀 더 준비를 하고 군대 갔다와서 다시 내가 원했던 대학을 들어가기로 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잠깐 전문 작가에게 수업을 받기도 했어. 이름을 말하면 다 알 수 있는 송 작가님이야. 태봉고 다닐 때부터 작가님과 인연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에 몇 달간 집중해서 공부를 좀 했지. 그 덕분에 돈은 안 되는 자원봉사 요청은 많이 받았어. 가장 대표적인 곳이 마산YMCA였지. ㅋㅋ 

아기스포츠단 캠프와 운동회, 가족의 밤을 비롯한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요청을 받았고, 원탁토론, 자전거 국토순례, 마산YMCA 회관 개관식을 비롯한 큰 행사들도 촬영을 했었지. 큰 행사 때는 혼자 한 건 아니고 쉼표 성진샘, 그리고 스승이신 송 작가님 같은 분들과 함께 했지만.

아 그러고 보니 필리핀에서 6개월을 지내는 동안에도 사진 공부를 좀 하고 왔네요. 

하지만, 진짜 사진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건 CH스튜디오에 입사하면서부터야. 창원 상남동에 있던 스튜디오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기서 근무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고 동호회에도 나가고 하면서 '실전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어. 아빠보다 사진을 더 잘 찍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 스물 네살, 짧은 생을 살다 떠난 저를 위해 제 아빠가 쓰는 이건호 이야기입니다. 

Posted by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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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나 여기로 이사왔어. 다들 잘 알 있겠지만 여긴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야. 

갑작스런 너무나 갑작스런 자전거 사고로 중환자실에서 1주을 지낸 후에 하늘 나라로 떠나왔어. 세상에서 이 작별을 가장 힘들어 하는 엄마, 그리고 아빠와 형... 할머니와 고모, 삼촌, 이모부를 비롯한 사촌들과 가족들, 외삼촌과 외가 사촌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많은 친구, 자전거 국토순례 지도자들과 선배, 후배들이 짧은 장례 기간 동안 저를 배웅하러 와 주었어. 도욱이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은 장례식장에서 함께 밤을 보내주고, 자기들 보다 무거운 나를 창원상복공원 화장장까지 잘 데려다 줘 정말 고마워.

사고와 장례 소식을 미처 듣지 못해서 나중에 카톡을 보내와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전한 친구도 있었어. 그중에도 초등학교 친구 상운이는 꼭 나를 배웅하러 올거라고 엄마가 많이 기다렸던 친구였어. 사실 엄마도 내가 상운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는 동안 상운이를 기다렸어.

나중에 상운이 한테 연락이 왔는데.... 장례 기간 동안 연락을 못 받았다 카톡이 왔었어. 내가 떠난 후에 온 상운이 카톡을 보니 소식을 늦게 들었다고...어디에 있는 지 알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다행히 내 폰은 살아 있고, 엄마가 대신 답장을 해줬어.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영혼과 육신은 가는 곳이 달라. 나는 평소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지만, 내가 삼성병원 중환자실에서 힘겹게 버티는 동안 우여곡절 끝에 세례를 받았고, '라파엘'이라는 본명을 갖게 되었잖아. 이 라파엘은 엄마, 아빠의 간절한 소망대로 빛을 따라 하늘나라로 왔어. 

하지만, 제 육신은 여러 분도 아시는 것처럼 창원상복공원 화장장에서 한 줌 '재'가 되었고, 창원상복공원 제 2봉안당에 안치되었어요. 엄마, 아빠를 두고 이사를 온 걸까요? 분가를 했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저는 이십 사년 동안 너무도 살뜰하게 돌봐주시던 엄마와 약간 차 갑고 무뚝뚝하지만 결국 다 챙겨주는 아빠 곁을 떠나 홀로 여기 와서 낯선 어른들과 함께 지내고 있지요. 

엄마, 아빠가 정말 좋아했던 후배 류창현 이사님이 옆방에 계셔서 든든하긴 하지만 좀 외롭고 심심하네요. 엄마, 아빠는 삼우 때 저를 보러 와서 류창현 이사님에게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 하시더군요. 이 낯선 곳에서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여기 상복공원 납골당 말고 하늘 나라에서는 저를 무지무지하게 사랑했던 할아버지께서 왜 벌써 왔냐고 나무라시긴 했지만, 제가 어렸을 때 처럼 다시 돌봐주고 계십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 때문에 바쁜 날 할아버지와 함께 자는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때 마다 할아버지는 두꺼운 손으로 제가 잠들 때까지 등을 쓰다듬어 주시곤 하였습니다. 

여기 주소는 창원상복공원 제 2봉안당 1층 4안치실 023호야~ 참 낯선 주소지?

아 제 주소를 알려드릴께요. 저는 창원상복공원 제 2봉안당 1층 제 4 안치실 023번입니다. 엄마는 입구 자리에 아랫 쪽이라고 아쉬워 하였습니다만, 제 자리는 창밖을 정면으로 볼 수 있고 빛이 많이 드는 자리입니다. 더군다나 정면으로 직선거리 8.5km 되는 곳에 바로 우리 집이 있습니다.

고개 만 들면 늘 하늘과 나무들을 바라 볼 수 있고 그 보다 더 멀리에는 엄마, 아빠가 사는 우리 집이 있으니 아주 아주 괜찮은 자리입니다. 아마도 엄마는 미처 이 생각을 못하였을 겁니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 19 때문에 봉안당 입실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매 주말마더 저를 보러 오는데, 다행히 제 자리는 창문 밖에서도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지난 주에도 지지난 주에도 엄마, 아빠는 창문 밖에서서 먼 발치로 저를 보고 같습니다. 엄마는 가까이서 저를 못 보고 가는 것도 안타까워 하였고, 준비해 온 꽃을 그냥 집으로 들고 가야 하는 것도 아쉬워하셨습니다. 

지난 30일 날은 저희 집에 사진 문패가 달렸습니다. 엄마는 이 작은 변화도 너무 고마워하고 감사해 하셨습니다. 저를 보러 올 때마다 항아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쓸쓸했는데, 제 사진 문패가 놓여 있으니 "그나마 이제 아들 보고 가는 것 같다."고 다행스러워 하였습니다. 

엄마 아빠가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저를 보러 왔는데 코로나로 봉안당 출입은 금지되었고 하필 그날 봉안당에는 전등이 모두 꺼져 있었습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지만, 잠시 후에 집중호우가 쏟아지기 직전이라서 하늘이 캄캄하였지요. 아마도 코로나19로 면회 금지 기간이라서 방문객이 없다고 관리소에서는 전등을 모두 꺼두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제가 있는 방(4호실)에는 전등이 켜져 있어서 창 밖에 있는 엄마, 아빠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이런 사소한 일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엄마는 저를 보러 올 때마다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는데...이 날은 창 밖에서라도 저를 보고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시더군요. 

이 곳에 가족이나 친척들이 있는 분들,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에 오늘 일이 있는 분들은 잠깐씩 들러주세요. 아빠가 저를 여기에서 지내도록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답니다. 아무 때라도 보고 싶을 때 보러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이지요. 차가 막히지 않으면 저희 집에서 15분...직선거리 8.5km인데 엄마, 아빠는 저를 보러 올 수 있어도 저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입니다. 

 

※ 스물 네살, 짧은 생을 살다 떠난 저를 위해 제 아빠가 쓰는 이건호 이야기입니다. 

Posted by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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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그룹 GOD가 처음 불렀던 '길'입니다. 
특히 비긴어게인에서 불렀던 '길'을 좋아합니다. TV 시청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합니다만, 비긴어게인은 '본방사수'를 하려고 했고, 엄마가 그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고를 당하고 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누워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엄마, 아빠, 형은 여러 차례 유튜브를 찾아서 비긴어게인에 나오는 '길'을 틀어주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와 병원 3층 복도를 엄마, 아빠와 함께 지킬 때, 15분 짧은 면회시간에 형은 울먹이면서 제 귀에 대고 '길'을 불러주었습니다. 

아빠는 사실 이번 사고가 아니었으면 제가 '길'이란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음치인 아빠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듣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노래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은 노래 가사에 나오듯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지금까지 내내 '내 길'을 찾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 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에게는 아주 많이 공감되는 노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오 지금 내가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왜 이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길에 끝에서 내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위한 꿈인가
그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이 노래 가사처럼 저도 제가 가는 길이 어딘지 알 수 없었지만 열심히 걸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길을 찾는 제 걸음이 느리다며 자주 재촉하였지만, 저는 "이게 정말 나의 길"인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서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게 정말 나의 길"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빠나 엄마의 기대만큼 빠르게 걷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걸음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만...

엄마, 아빠는 제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아빠는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이런 저런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덟 차례 참여한 자전거 국토순례, 백두산 자전거 여행, 지리산 등반, 발리 여행, 태국 여행, 일본 여행, 필리핀 꿈꾸는 청년 봉사단 활동 그리고 제가 혼자서 다녀온 제주도 라이딩 같은 것은 모두 엄마, 아빠가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경험 쌓기였답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체험을 하면서도 좀 처럼 배움이 쉽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청년이 되었을 때는 그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남곤하였답니다. 

제가 하늘나라로 떠날 때, 엄마, 아빠가 가장 후회한 것은 그냥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다 할 수 있게 했어야 하는데 왜 못하게 막았을까 하는 후회였습니다. 서울에 놀러 갈 수 있게...용돈도 더 넉넉히 쓸 수 있게...갖고 싶은 것 가질 수 있게 못해준 것을 많이 후회하였습니다만,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세상 누구도 심지어 저 자신 조차도 제가 이렇게 훌쩍 하늘나라로 이사하게 될 줄을 몰랐다는 것을. 

엄마, 아빠가 안 된다고 한 것들은 대부분 제가 더 상처 받고 주눅들까봐 못하게 한 것들이고, 넉넉한 용돈을 주지 않은 것은 제 미래를 준비하는 종잣돈을 만들어주시려고 그랬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에게 후회할 실 일이 아니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스물 네살 짧았던 세상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노래말의 끝 구절처럼 제 길의 끝까지 걸어가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엄마, 아빠는 하루 15분 짧은 면회를 들어오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제가 응급실에서 하루 밤을 보낼 때도 엄마는 저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제가 아기 때 저를 안고 불렀던 노래들입니다.  '섬집 아기'와 "은자동아 금자동아'를 불러주며 엄마, 아빠는 많이 울었습니다. 

형과 제가 태어났을 때 모두 출산 휴가만 마치고 일터로 갔던 엄마는 미안한 마음이 담긴 '섬집 아기'라는 노래를 참 많이 불러주었습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갈 때,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배고 스르르러 잠이 듭니다." 하는 이 구절에 특히 마음이 많이 갔던 모양입니다. 저를 두고 매일 아침 일터로 나가는 모습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빠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여러 번 눈물을 흘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미 들을 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많이 다녔지만 엄마, 아빠의 노래 소리를 귀가 아니어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불러주는 엄마의 노래를 온 몸으로 듣고 또 들었습니다. 

 

※ 스물 네살, 짧은 생을 살다 떠난 저를 위해 제 아빠가 쓰는 이건호 이야기입니다. 

Posted by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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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재작년 8월 '꿈꾸는 청년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필리핀에 파견을 다녀왔습니다. 6개월 정도 다녀왔었고 그 덕에 군대가 밀렸습니다. 군대를 미루고 다녀왔던 필리핀은 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고, 그 속에서 활동 하면서 제 관심사 였던 '사진'으로 다양한 장면을 담았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 해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 더 잘 살게 되었으니까요. 봉사를 다녀왔을 땐 2월 이었고 먹고 놀다가 군대 가야겠다는 생각에 놀다 집에서 이러고 살면 되냐 직업전문학교 같은 곳이라도 다녀라~ 해서, 직업전문학교 편집 디자인 반에서 6개월 과정을 이수 하였습니다.

 정신 없이 이리저리 보내다 2018년 2월이 되었고 저는 졸업 후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한 사후 관리를 받으면 취업을 마음 먹었습니다. 결과적으론 지금 다니고 있는 스튜디오에 취업을 했었습니다. 원래 5월에 입대 신청을 했었지만 제가 취업한 곳이 너무 좋았고,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 군대를 다시 미뤘습니다. 

 필리핀을 다녀와 중간중간 단원들과 카톡 정도는 할 수 있었으나 다 각자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고, 무엇보다 제가 마산에 살고 있는 터라 만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여름휴가가 나왔고, 이번에 시간 내서 한번 봐야겠다 생각 후 여름 휴가 때 대전을 향했습니다.

 국토순례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친 적은 있었지만, 그냥 걸어다닌 건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국토순례는 많이 참여했지만 혼자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간 적은 별로 없더라구요. 중,고등학교 때도 그냥 집 근처, 다른 곳 나가봤자 창원지역 내에서 돌아다녔고 사실 어딜 많이 가본 적이 없더군요. 

 꿈봉 단원 전체가 아닌 YMCA로 파견됬던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래서 대전에서 모였던 거구요. 대전에서도 너무 더워 어딜 더 돌아다니거나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밥 먹고 보드게임 카페에 가서 게임 하면서 대화나 하는 정도이긴 했으나, 사석에서 만난 건 정말 오랜만 이었습니다. 

사진은 다양하게 찍지 못하였지만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았습니다. 공적으로 중간중간 자리가 마련되서 얼굴을 볼 수는 있었으나, 제대로 이야기는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때 만났을 때도 같이 파견 나갔던 단원 한명이 바빠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직장을 가지기 전에도 만나기 어려웠지만,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도 사람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헤어지면서 꿈봉 4기 전체가 다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다같이 만나서 MT처럼 놀아보자~ 했지만 사실 그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너무 나 바쁜 일상 속에서 한번쯤 시간내기가 너무 어렵더라구요... 직장을 가져서 직접 돈을 벌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6/08/27 - [일상] - 필리핀에서 찾아온 우울... 극복해내다.

2017/03/06 - [일상/성인새내기의 이야기] - 생애 첫 사진전

2016/07/13 - [필리핀 해외연수] - 해외봉사활동 준비...KCOC 국내연수 첫날...

2016/08/10 - [필리핀 해외연수] - 필리핀 파견 첫날, YMCA 연맹에서 보낸 하루

2016/08/15 - [필리핀 해외연수] - 필리핀에서의 첫 주말! 새로운 배움.


Posted by 감성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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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금요일인 22일 제가 다니는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매번 찍기만 하다 처음 촬영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출근을 해서 오전 오후 촬영을 마치고 마지막 타임 촬영전에 저희 가족이 촬영을 들어갔습니다. 

 보통 도착하게 되면 카운터에 직원들이 인사를 해주시고, 입구 옆에 배치되어 있는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꺼내 갈아신고 들어오면 예약자 성함을 이야기 하시면 그 다음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님들(저희 가족포함)께 "촬영전 TIP! 꼭! 읽어주세요" 라는 안내문을 받게 됩니다. 

 웃는게 이상하거나 치아보이면서 웃는 걸 인위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사진에서 가장 이쁜 사진은 웃는 사진이라 저희가 최대한 환하게 웃어 달라고 요청도 하고 촬영을 하면서도 웃겨드리고 있습니다. 

 TIP을 읽어보시면 작게 촬영순서도 꼭 적혀 있으니 촬영을 오시게 되면 꼭 한번 씩 읽어주세요. 이것 외에도 사진은 없지만 따님들이나 헤메를 신청하지 않으신 분들이 쓸 수 있도록 셀프화장대가 배치 되어 있으며 고데기, 드라이기, 헤어스프레이, 왁스 등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또한 셀프 화장대 앞에는 여성분들이 쓸 수 있도록 화관이나 머리띠 등을 준비해두었으니 쓰시면 됩니다. 

 *****참고*****
 팁에도 적혀 있지만 많은 분들이 문의를 주시는 부분인데 반려동물과의 촬영은 평일에만 가능합니다. 주말에는 다른 가족분들도 계시고 알러지가 있는 분들도 간혹 있으셔서 주말엔 반려동물과 함께 촬영은 도와드리지 못합니다.

 헤어메이크업을 엄마 아빠 모두 받으시고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촬영은 선배 감독님이 들어와주셨고 점장님께서 특별히 스냅촬영도 해주셨습니다. 

******현재 업로드 되어 있는 사진은 무보정임을 밝힙니다.*******

촬영은 두컨셉으로 나뉘어 지는데 가족 모두가 드레스턱시도를 입고 찍는 리마인드웨딩이 있습니다.
또한 캐쥬얼가족사진 이라고 해서 가족분들이 옷을 준비해주셔도 되고 스튜디오에서 대여 해주는 흰색 셔츠를 입고 집에서 청바지나 검정바지로 통일성 있게 챙겨오셔서 찍는 가족사진이 있습니다.

 직원이어서가 아니라 직접 찍혀보니 평소에 입어보지 못하는 옷인 리마인드웨딩이 조금 더 재밌는 거 같았습니다. 옛날 사진관처럼 배경 하나에서 1장만 찍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에서 가족 구성원들에 맞게 다양하게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촬영을 해보니 평소에 보여주던 자세부터 옷을 입는 것이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사실 정장을 편하게 입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 안되긴 하지만..... 매번 촬영만 하다가 직접 찍혀보니 꽤 힘들었습니다. 

 촬영을 하는 저도 힘들긴 했지만 찍히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더욱 더 촬영 때 신나고 재밌게 촬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집은 캐쥬얼까지는 안하고 리마인드 한컨셉만 했었는데 약간 아쉬웠습니다. 저는 평소 두컨셉 촬영을 해오다가 한컨셉만 하고 끝내기에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사실 전부터 가족사진을 찍을 계획이 있었는데 제가 취업한 곳에서 찍자고 얘기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에 대해서 부모님들도 형도 다 만족을 했고, 집에 오셔서까지도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진이 잘 나와서 기뻤습니다. 

 또한 촬영을 통해 부모님도 형도 느낀 게 많았다며 하는 말이. "니도 참 힘든 일 하는구나. 평소에 이야기만 들었을 땐 그렇게 힘든 일 같지 않아보이더니."하시면서 뭔가 제 직업의 힘든 점을 인정 받았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기분이 좋기도 했고 그만큼 나도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ch스튜디오 창원점 제가 직원이어서 저희 가족이 직원의 가족들이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친절하게 대해주시니 가족사진을 찍어야 하거나 찍고 싶은 분들 저희 스튜디오로 오세요!! 최선과 정성을 다해 촬영 도와드리겠습니다. 
 처음 여기 면접 보러 왔을 때 저는 "여기 떨어지더라도 가족사진 여기서 찍으면 되겠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이 곳 우석빌딩 건물 3층에 저희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스튜디오 연락처 : 
055 - 274 - 4243 입니다. 문의전화 주시면 친절히 답해드리겠습니다.


*****촬영은 모두 예약제 입니다. 스튜디오로 미리 전화주시면 방문상담도 가능하시니 구경하러 오세요~*****


2018/06/12 - [일상/성인새내기의 이야기] - 제가 취업한 CH스튜디오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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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한 지 2개월째. 졸업 후 1달 정도 취업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넣었습니다. 그러다 면접 보러 오라고 온 한통의 전화, 현재 직장인 CH스튜디오 였습니다.

 상남동에 위치한 스튜디오는 집에서 시내버스 타고 약 3~40분정도 소요되는 거리여서 약간 멀게는 느껴졌지만, 그래도 우선 신났었습니다.

 혹시 늦을까봐 면접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근처 커피숍으로 갔습니다. 주변에서 팁으로 말해줬던 부분이 '5~10분 정도 일찍 가는게 더 좋다.' 라는 이야길 해주셔서 커피 한잔하고 여유를 가지고 면접을 보러 들어갔습니다. 옷은 캐쥬얼정장으로 갔었습니다.

 면접에서 대학 어디 나왔냐 보다 활동을 되게 많이 했네요? 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애초에 고교부터 대안학교를 나왔고 대학을 가지 않아서 더 많이 활동하여 경험을 쌓는 거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고 밑전이 많이 없으니 자원봉사 또한 더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한 덕분에 계속 불러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면접이 끝나고 그 주 목요일에 연락이 왔습니다. 4월 4일부터 출근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첫 직장이라 자원봉사 할 때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습니다. 취미로만 하던 촬영이 직업이 되다보니 저를 뽑아준 스튜디오에도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 하게 될 일에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제가 취업한 직장의 내부는 이렇습니다. 제일 먼저 보이는 사진이 카운터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대기실입니다.

밑에 두 사진은 헤어메이크업 및 의상대여 탈의실 등입니다.

 첫 직장이라 자원봉사 할 때와 다른 딱딱함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만 나오던 '개인주의'처럼 되게 딱딱할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다들 너무 친절하게 잘 대해주시고 '편하다?'라고 해야할까요? 직장에 오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출근할 때 '오늘도 화이팅해서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직장이 절대 편한 곳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삭막하지 않다보니, 신입사원으로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과 다짐을 했습니다.

 2개월째 일하면서 느낀 건 아직도 더 노력해야겠다. 하는 생각입니다. 촬영을 야외에서 친한 사람들이나 이야기 좀 해본사람들과만 했다보니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거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물론 선배 감독님이나 점장님이 직접 촬영하시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긴 했으나 첫 한달은 약간 힘들었습니다. 낯선 환경이기도 했고 회사 시스템도 이해해야 하는 단계였고, 업무도 익숙하지 않다보니 처음엔 실수도 많이 하고 혼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사실 혼난다는게 '잔소리'로 듣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더 스트레스 받을 거 같아 했던 생각이 '잘 모르는 나를 조금 더 가르쳐주려고 하는 거다. 아직 친하지 않아서 언성이 높아 보이는 거다,' 라고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니, 가끔 실수해도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잘하겠습니다. 하고 고치면 되는 일이더라구요. 물론 한번만에 안고쳐지는 것들은 저도 답답해서 힘들었습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촬영은 익숙해지면서 점점 늘었고, 멘트도 계속 하다보니 능글 맞아지고 뻔뻔해지기도 하더군요. 한팀 한팀 최선을 다하다보니 집에가면 항상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적응이 안됬던 건 평일에 쉬고 주말에 일하는게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업종 특성상 남들이 쉴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는게 맞았습니다.

 첫 직장에서 신입사원이자 촬영감독으로 2달째 일해 실력도 늘었습니다. 요즘 계속 하는 생각은 촬영하는 시간엔 가족분들이 즐겁게 웃으며 신나게 찍고 갔음 하는 마음으로 멘트와 포즈 촬영술을 연구하고 노력중입니다. 몸이 피곤하셔도, 또는 집안내에 불화가 있으셨더라도 오셔서 기분 좋게 찍다보면 풀려서 가시는 분들을 뵙기도 했습니다. 가족분들이 제 사진들을 보고 "사진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또는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마디 정도만 들어도 그 다음 촬영 땐 정말 보람을 느껴 지치더라도 더 열심히 찍게 됬었습니다.

 저는 이 직장이 너무 마음에 들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 사진에 자신감을 가지고 더욱 더 노력해서 가족분들께 웃음과 즐거움, 행복함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성장하는 모습들을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사진제공-
CH웨딩스튜디오

2018/06/02 - [일상] - 직업전문학교 졸업 그 이후(틀을 깨는 이력서)

2018/06/29 - [일상/성인새내기의 이야기] - CH스튜디오 창원점 촬영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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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취업 패키지를 통해 직업전문학교 시각디자인반을 졸업했습니다. 반장은 아니었지만 반장 같은 역할을 지속적으로 한 결과 '봉사상'을 얻고 USB도 함께 얻었습니다.

 시각디자인은 꾸준한 연습도 필요로 했고, 아이디어도 필요로 했습니다. 평소 생각하던 가장 큰 부분을 깼던 부분이 '언제나 기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순 없다. 기존에 있는 거에서 다른 요소의 조화로운 결합 또는 뒤틀리면서 나오는 결과물도 새로운 디자인이 될 수 있다.' 였습니다.

 수업을 듣고 따라하고 과제도 하고 팀별과제도 해보면서 느꼈던 점은 "아 정말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잘되는게 아니구나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잘하는 것은 중요함을 넘어의 감정까지 생기는 구나.'를 느꼈습니다.

 디자인을 배우면서 포트폴리오를 처음 만들어보았으며, 이력서 또한 한글 문서로만 만드는 것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만들어 보았던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는 이렇습니다.

 사실 대부분을 일러스트로 작업 했습니다. 인포그래피도 활용하고 꾸미면서 주로 사용한 색은 검정, 회색, 민트색 이었습니다. (내용을 상세히 보여드리기엔 개인정보라서 조금 그렇네요.) 주로 사회활동을 많이 했던 저로서는 했던 내용을 다쓰는 자소서와는 다르게 간추려서 써야 하는 이력서가 쓰기가 힘들었습니다.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는 거의 핀터레스트(Pinterest)를 통해 아이디어 카피를 했습니다. 똑같이 그림을 따오는게 아니라 보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면서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이력서 또한 핀터레스트를 통해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습니다.

 다양하고 많은 이력서, 자소서, 포트폴리오 등 팜플렛, 포스터, 다양한 시각디자인으로 쓸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구글에서 검색해서 들어가시면 되구 아이디는 구글계정 연동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뜬금 없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디자인을 하면서 생겼던 꿈은 디자인을 하는 사진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사진 또한 빛으로 만드는 디자인이고 디자인 직종에 있는 사람들 중에선 사진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디자인을 하는 사진사' 라는 말이 이상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제가 원하는 삶에는 디자인이 주가 되기보단 사진사가 주가 되고 싶어서 인가 봅니다.

  직업전문학교 졸업 후에는 청취패 상담을 통해서 취업을 알아보고 워크넷, 사람인, 잡코리아 등을 통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자소서 등을 올려서 알아보았습니다. 대부분 시각디자인 쪽으로 지원서를 넣다가 스튜디오 촬영감독에 2개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다 CH스튜디오 라는 곳(현재직장)에서 면접 보러 오라 전화가 왔고, 날짜와 시간을 받아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면접은 한 1시간 정도 했구요. 결과적으론 촬영감독으로 취업을 성공했습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그대로 종료 되는 줄 알았으나 사후관리라고 해서 3개월 시작했었습니다. 평소 사진이 취미였던 저는 되게 기뻤으나 주변의 인식이 그닥 좋진 않았습니다. 제가 취업한 스튜디오의 문제가 아닌 사진으로 어떻게 먹고 사냐는 것 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우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꿈도 사진사 이였으니까요. 저는 돈받고 하는 경험보다 주로 사회활동(봉사활동)으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돈을 받고 일하는 건 거의 처음 이었습니다. 

  아무튼 첫 직장인 만큼 열심히 해서 꼭 정직원이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내용은 출근 후 기초교육 그리고 회사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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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하고 집단상담을 듣는 것으로 1단계 과정이 끝이 났습니다. 2단계에서 하는 프로그램으로 저는 학원을 다니는데 마산에 '직업전문학교'에서 시각(편집&웹)디자인 과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는 곳은 마산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위치한 한진빌딩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첫날 가보니 건물 내부가 굉장히 깨끗하였습니다. 

 여기 총 인원은 한 학기당 25명씩 수업을 하는데, 현재는 24명이 있고 다음주 화요일까지 추가접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부 국비지원이어서 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제 시간에 수업에 참여만 하면 됩니다. 여기는 교실인데 현재는 웹 디자인을 중심으로 배우고 있으며 앞으로 편집도 배우게 됩니다. 주로 포토샵과 일러스트, 인디자인, 드림위버 등의 프로그램을 다루며, 교재도 무료로 지원하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해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휴게실인데 전자렌지가 2개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점심 식사 비용이 3300원 이다보니, 다들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편의점에서 라면이랑 삼각김밥을 먹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도시락을 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여러 다양하게 고려 해보았을 때 그렇게 좋은 식단이라고 볼 수가 없다보니 조금 염려되는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첫날 제가 점심 때 나가봤는데 김밥천국에도 3000원에 먹을 수 있는 메뉴는 김밥 1줄 또는 라면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고,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로 생각했습니다.

 한진빌딩 옥상에서 본 오늘 풍경입니다. 이 빌딩에 옥상을 개방 해준다 하여, 오늘 처음으로 올라와봤는데 굉장히 좋았습니다. 올라와서 딱 드는 생각이 카메라 들고 와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오려합니다.

 20일과 21일 수업을 들어봤는데 20일에는 되게 쉽게 느껴져서 오늘은 굉장히 편하게 갔습니다. 오전에는 수업을 듣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설명 들으면서 필기하고 직접 해보면서 처음엔 되게 신기해서 즐겁게 했습니다. 점심도 먹고 오후 수업에 들어가는데, HTML에서 쓰이는 명령어를 쓰다보니 되게 힘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 배웠던 것들인데, 용어들도 생소하고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니 좀 많이 어지러웠습니다. 이게 점점 쌓이다보니 보는 것 만으로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중요하게 했었던 말은 이걸 굳이 지금 다 외울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달 정도 계속 예시문들을 가지고 연습해보면서 기능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수업 들으면서 "아 나는 솔직히 웹디자인 보다 편집이 더 관심 있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tistory블로그에는 HTML을 사용해서 블로그를 직접 꾸밀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배워서 나중에 직접 블로그를 꾸며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수업이 전체적으로 재미 있어서 크게 지루하진 않으나, 아직 초반이고 하다보니 이야기 할 사람을 못 만들어 심심하다는 거 정도와 밥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약간 외로움을 타게 되는 거 정도입니다. 물론 집단상담 했을 때 처럼 사교성을 발휘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이번주 까지는 조금 지켜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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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 상담 마지막 날. '희망으로 가는 날'이라고 해서 꿈을 이룰 수 있는 현실 계획 세우기를 했습니다. 현실 계획으로는 최종목표가 이제는 '청소년 지도사'로 확정했습니다. 그러고 현재는 시각 디자인 과정을 직업전문학교에서 들으려고 합니다. 저는 태봉고를 다니면서 3년 동안 포토샵이나 영상편집기술을 조금씩 익혀왔고, 그래서인지 시각 디자인 쪽으로 조금 더 상세하게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직업전문학교에서 하는 시각 디자인 프로그램이 국비 지원이 된다고 하여서 들어보려 합니다.

 저는 일단 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 취득을 우선으로 하면서 실력 향상도 할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취업 준비를 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계획을 다 세울 순 없었지만, 확실한 건 군 입대전에 경력을 쌓아놓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재취업을 하게 될 때 경력이 있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상담선생님이 추천했던 방법은 취업을 한 상태로 방통대에 들어가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 따는 것을 추천하셨습니다. 군대를 최대한 빨리 다녀와도 최소 25, 26세인데 공부해서 대학 가서 졸업까지 하면 최소 서른에서 서른하나가 됩니다. 사실 이렇게 따져보면 사실 현재 저는 젊지만 젊은 게 아닙니다. 같이 상담했던 어른들은 아직 그 정도면 괜찮다고 하시지만, 경험이 없는 어린 저로서는 약간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벌어서 제 앞가림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취업으로 먼저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다음주 일정표를 계획 해보라며 실천을 하기엔 당장 계획을 추가로 세우는게 좋다고 하셨지만 이미 일정들이 있어서 저는 계획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계획 세우기가 끝이 나고 자신에게 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편지는 다음주 중으로 저희에게 우편으로 배송된다는 이야기에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평소 캠프나 레크레이션을 하면 이런 활동이 자주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계획 세우기 이후 저희는 4일 동안 함께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칭찬 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칭찬에서 저는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열정적이고 패기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활기차고 명량하다, 막내지만 다양한 경험이 많아서 도움이 많이 되고 배울 점도 많은 거 같다. 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요즘 어떤 활동을 가든 활기차고 명량하다 또는 자신감이 넘치고 주관이 뚜렷한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과거에 좀 소심하고 기죽어 있었는데, 요즘은 좀 활기차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자신감이 넘친다 했는데 그것은 대안고등학교를 나오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발표를 자주 해봐서 그렇다는 평을 받은 거 같습니다. 사실 저는 명확한 진로 계획보단 '내일배움카드'를 발급하기 위함과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하면 돈을 지급한다 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상담선생님에게 조언도 얻고 인생 선배님들에게 조언을 들으면서 정말 '집단상담'을 듣길 잘 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듣다보면 분명히 도움이 되는 것도 있고, 내 이미지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고민이 있으신 분들은 이러한 집단상담에 참여해보시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들었던 집단상담은 '경남산업기술진흥법인' 이라는 곳에서 진행했습니다. 집단상담이라고 해서 막 딱딱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레크레이션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재미있게 진행되었습니다. 강사님들의 재치 넘치는 진행과 다양한 간식들이 강의 집중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루할 틈 없이 하루를 보내게 되는 경험을 했으며, 저는 개인적으로 이곳 집단상담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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