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다 타고 고산 족 마을에 드렸던 것이 앞의 글 이였구요. 이번 글은 그 뒤를 이어서 고산 족 마을에서 숲을 지나 폭포로 가는 것과 뗏목을 타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고산 족 마을에서 출발해서 폭포가 있는 계곡까지 가는 길이 정말 이뻤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빌딩의 불빛이 있다면 여기는 그냥 숲 그 자체 였습니다. 그저 자연경관이 이뻤고, 겨울에 갔지만 태국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느끼엔 그저 여름! 더웟습니다. 

한국에도 있을 만한 그저 숲길이지만 한국에는 숲보단 빌딩이 더 많더라고요

     이런 길을 계속 걷다보니 왠 계단이 있었는데 정말 많았습니다. 오르는게 아니라 내려가는 계단이였으나, 나중에 올라갈때는 어떻게 올라갈까 싶었습니다. 계단이 보통 일반적인 계단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말이 통해도 낯가림을 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자주 않나왔고, 그저 형 하고만 이야기를 하면서 왔습니다.

                     정말 의외로 계단이 많았고 다 내려왔을때!!

     요런 느낌!! 

     저기 앞에 저렇게 서 있으면 물보라가 튀어서 정말 시원했습니다. 물에 들어가도 된다고 했으나 갈아 입을 옷을 하나만 챙겨 왔고, 더군다나 고등학생이랑 대학생이랑 머하고 노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실 배도 너무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들었습니다. 태국 계절로 여름에는 이 폭포에 자주와서 많이 놀고 간다고 했습니다.

     폭포 옆으로 가면 나무 집? 이 있는데 여기에 간식가계가 있었습니다. 

     간식을 사고 휴식을 취하려면 저렇게 대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조금 무서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뒤에 있는 많은 사람 때문에 먼저 건너갔고, 다리가 신기하기도 했고, 어떻게 이런걸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 나라 사람들의 손재주가 대단했던 거 같습니다. 

     나중에는 저보다시피 저런 여유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맨 오른쪽 밑에 있는 사진은 형이 태국판 스윙칩을 사서 먹길래, 저도 먹으려고 뒤에 섰더니 저렇게 찍혔네요. 정말 저렇게 누워 있는데, 불안하기도 했고, 오히려 시원해서 땀이 식어서 좋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나니 다음 장소로 옮겼습니다. 다시 차가 있는 고산 족 마을 근처로 갔고, 우리는 뗏목을 타러 갔습니다.

     뗏목을 타는데 원래 4명이 탈 수 있는데 저희 가족이 딱 4명이라 4명 같이 타겠구나 생각 했는데, 형이랑 저랑 태우고 부모님들끼리 태우고 해서 따로 태우더 라고요. 정말 탈때 물이 어후 여름이라도 차갑긴 하더라고요. 아쉬웠던게 카메라나 전자제품을 들고 타면 물에 젖는다고 놔두고 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때 개인 사진은 없고, 그 체험 하러가면 현지인들이 사진을 찍어서 우리 사진으로 액자를 팔아요. 그래서 그 사진 카메라로 다시 찍어서 올립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만들어 줍니다. 액자는 코끼리 똥으로 만든 액자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30분 타는 거라 해서 중간에는 정말 재밌게 타 보려고 저희 둘이서 온갖 장난을 다 쳤습니다. 장난을 치다가 거의 다와서 제가 빠져버렸습니다. 형이 자꾸 약 올리길래 도착해서 빠트렸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사람은 저랑 저희 형 말고는 없더라고요. 정말 재밌기 위해서 열심히 배도 흔들고 손바닥 밀어치기도 해보고, 갖가지 놀이를 해보았던 거 같습니다.

     형이랑 그렇게 재밌게 논 것은 정말 오랜만 이였고, 형제의 우애? 를 높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거 같네요.


   다음편은 가이드 없이 저희끼리 태국에 돌아다녔던 날이 있는데 그날 중에서 치앙마이 대학과 도이스텝에 대하여 쓰기로 하겠습니다.


Posted by 감성사진사
,

     태국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2번째 날 아침엔 치앙마이 트레킹 이라고 해서 코끼리도 타고 대나무 뗏목 래프팅도 하며, 고산족 마을에 방문을 한다. 오늘은 코끼리 트레킹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도 있었는데 총 4팀 이였다. 2팀은 중국인이였고, 다른 우리를 포함한 2팀은 한국인이였다. 해외에 와서 한국 사람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였지만, 의외로 치앙마이에 한국사람들이 많았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가족을 포함한 4팀은 가이드의 영어로 말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코끼리를 먼저 타러갔다. 사실 영어로 말하는데 살짜살짝 들리는 영어단어를 제외하곤 알아 듣기가 힘들었다. 이때 사실은 영어공부를 진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해서 짐을 놔두고 내렸다. 

     도착했을 때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고, 특히 영국인이 더 많게 느껴졌다. 우리는 도착해서 우리가 탈때까지 기다렸다.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형이랑 같이 탔다.

     형이랑 함께 타고 엄마랑 아빠랑 탔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타는 거라서 약간 무섭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코끼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게 출발 하기전에 코끼리 먹이를 사는데, 코끼리를 타고 있으면 코끼리가 먹을거를 탈라고 우리에게 코를 내민다. 코를 내밀면, 그때 코에 맞춰서 주면 받아서 먹는다. 이걸 30분정도 탄다고 했는데 사료는 몇개 안들었고, 그런데 코끼리는 자꾸 달라고 그랬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달라고 해도 안주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 코끼리가 코로 바람을 내뿜는데 정말 냄세가 지독했다. 

     그렇게 가다보니 중간중간에 코끼리 먹이를 살수있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달라할때 그대로 안주고 남기면서 갔더니 먹이를 자주 사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리에 비해 엄마랑 아빠는 계속 먹이를 사서 줬다. 엄마는 아마 그 냄새가 싫어서 게속 사서 주자고 했을 것이다. 불쌍하긴 하지만 우리는 코를 내밀면 머리를 밟앗다. 머리를 밟으니 정말로 코를 내렸다. 

    우리는 코끼리를 타면서 이야기도 하면서 탔다. 우리 코끼리는 먹이를 주지 않았더니 정말 천천히 여유롭게 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라면 여기서는 아파트만큼 큰 나무나 산을 보았다. 그렇게 풍경을 감상하며 한바퀴를 돌았고, 지루할것 같았지만 생각만큼 지루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코끼리가 자꾸 밥 달라고 코를 올려서, 코 내린다고 지루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뒤에 앉아 있었고 형은 거의 다 돌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때즘 코끼리 목에 올라탔다. 나는 무섭고 떨어질 것 같아서 올라타지 않았다. 

     그 다음 코스는 고산족 마을 이였는데 고산족 마을에서는 베짜기를 해서 관광객들에게 머플러를 팔거나 했다. 그러나 아무도 사지 않았다.

(이것이 베짜기)

     그렇게 고산 족 마을에서 폭포로 걸어 올라가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계속~~


Posted by 감성사진사
,

 저희 학교는 3학년 졸업식이 1월에 있는데, 졸업식과 방학식을 같이 합니다. 그래서 방학을 하고 12일 일요일에 밤 비행기를 타고 태국 치앙마이로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중학교때 일본을 갈때와는 달리 기대에 가득 차 있는 상태였습니다. 6시간의 긴 시간동안 잠도 자고 폰도 보고 간식도 묵고 했습니다. 저희는 제주항공 비행기로 갔는데, 제주항공의 간식은 머핀과 삼각김밥, 음료 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긴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에 도착 했을 때 현지시간은 11시를 넘어가는 시각 이였습니다. 한국과는 2시간 차이가 있는 나라였고, 치앙마이에 아빠와 친분이 있는 분이 여행코스를 추천도 해주고 호텔까지 바래다 줬습니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서 방을 둘러보고, 부모님과는 층이 달랐고, 아침에 만나기로 하며 씻고 잤습니다.

 13일 아침 저희는 아빠와 친분이 있는 그 분께서 태워주셔서 이리저리 소개 받으면서 차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치앙마이 현지에 있는 산에 오르게 되었는데, 옆에 보이는 지도를 따라 제일 밑에서 부터 차를 타고 올랐습니다. 올라가다가 중간에 탁 트인 곳이 있었고, 거기 잠시 내려서풍경을 감상하며 사진촬영도 하고 즐겁게 올라갔습니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트렁크에 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데 태국은 허용이 되었고, 저는 트렁크에 타고 거기 누웠습니다. 타고 가면서 멀미도 나긴 했지만, 올라가는 동안의 풍경이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사진도 찍고, 멍 때리며 감상도 하고 현지인 주민 또는 외국인 관광객과 인사도 했습니다.


 

중간에 오르다가 본 풍경

저희 말고도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있었습니다.

카메라 들고 서 있는 것이 접니다.

산 위에 학교가 있었습니다.

학교 주변에 있는 식물들1

식물2

식물3

식물4

공부를 하고있는 현지 아이들

해발 1300m를 넘는 이곳을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더라구요.


 저는 계속 트렁크에 타서 풍경을 찍었고, 올라갔다 내려오니 점심시간이였습니다. 저희 태국에서 첫 밥은 백화점 푸드코너 였습니다.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밥 알겡이가 한국과 달랐고, 별로 내키지 않는 밥이였습니다. 그래도 먹었고, 오후에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구경을 하면서 서장에서는 과일도 사 먹고 했습니다. 걸어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고, 가족들이 모두가 동의를 해서 자전거를 타고 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걸었습니다.

형과의 추억 형보다 제가 더 크죠;;

사원1

엄마를 찍는데 저도 나왔네요

사원2

시장에서 파파야와 망고를 사 먹었습니다.

사원3

사원3

사원3에 있던 종

정말 기엽지 않나요? 

대부분 다 사원 이여서 별로 재밌지는 않았고, 다리가 아프고 사실 좀 짜증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시장에서 과일을 샀는데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자전거를 타고, 호텔까지 이동했습니다. 호텔에 과일을 두고 시간이 좀 있어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우리가 아까 헤어졌던 분이 저녁을 먹으면서 공연을 보자고 하셨고, 쿰 깐똑 쇼라는 태국 전통 춤을 보며 밥을 먹었습니다. 바을 먹고, 공연을 보고, 공연하신 분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기념촬영


태국 전통춤 영상입니다.

사진을 연사 한거를 이어서 붙인거라 끝기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늦은시간에도 데리러 오셔서 저희를 호텔까지 감사히 태워 주셨습니다. 첫날 여행기는 이렇게 마칩니다.


Posted by 감성사진사
,

 태봉고등학교를 다니며 2014년을 맞이 하였다. 시험이 끝나고 PTday가 끝나고 이제 졸업주간 이라는 행사와 졸업식을 압두었었다. 그리고 시작 된 졸업주간 일단 주열기에 안했던 사람들이 졸업주간에 하였다. 주열기란 주를 여는 시간 이라고 해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매주 몇몇의 아이들이 발표를 하는 시간이다.

 졸업주간은 졸업식을 맞이하는 졸업생들이 일주일간 행사를 여는 날이다. 일단 아침 10시에 일어나고 등교시간과 수업시간을 각종행사로 바꿔놓는 시간 이었다.

 6일 우리의 등교시간은 10시이다. 첫날은 주열기와 마녀사냥(요즘 TV에 방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주열기는 그럭저럭 진행되고, 점심먹고 본격적으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나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들어만 보고 본 적은 없어서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마녀사냥이 끝나고는 자유시간이였고, 자주 나가지 않는 댓거리에 갔다.

 나는 친구들과 졸업하는 선배들과 함께 추억이라는 변명으로 피씨방을 갔다. 그래서 친구와 Stacraft라는 게임을 시작했고, 즐겁게 하고 왔다.

 7일 체육대회와 담력테스트

   체육대회를 위해서 마이크를 설치하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2,3학년 대 1학년의 승부 저희반의 경우 짝피구를 했습니다. 저는 처음 봤습니다. 우리반의 그런 단합을....... 짝피구가 끝난 후에 여왕닭싸움 이라고 닭싸움을 하는데 여왕을 지키면서 하는 게임 이였습니다. 2게임다 당연하단듯이 패배하고 반에서 2학년 올라가기 전에 파티 하자고 해서 마지막으로 파티를 했습니다.

  저는 조금 늦게 합류했고, 떡과 과자와 감귤로 배를 가득 채웠습니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6일과 마찬가지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리고 담력테스트 밤 10시부터 시작해서 12시 넘어서 끝난 담력테스트 같이 하고 싶은 친구가 있었지만 나에게 그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스텝이였을뿐 그래도 마지막에 치워가면서 공포를 줬던 귀신 형, 누나들 정말 고맙고 수고하셨어요.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이 끝이나고 대충 정리 해두고, 기숙사에 입실하였습니다. 그렇게 늦은 밤 피곤하지만 선배들과 얘기를 좀 하다가 정리하고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8일 졸업공연과 졸업생들의 한마디

 졸업식 전날이자 졸업주간의 마지막 날로 첫 시간은 일단 동아리 활동이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아리 보다는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고, 저는 졸업공연을 준비 했습니다. 방송부로서 당연하다는 듯이 졸업공연을 준비했고, 아침에 교실을 청소하고 바쁘게 준비를 시작하고 점심먹고는 리허설 준비를 했다. 1,2학년은 졸업식때 부를 졸업노래를 준비하고 나는 1학년이지만 인력부족으로 뛰어다니면서 리허설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리허설을 하고 이어서 본 공연을 위해서 애들을 모았다.

 그렇게 시작 된 본 공연! 2학년 선배의 혼자라고 생각말기(학교2013O.S.T)와 그 밖의 찢어진 나비(3학년 선배들3명과 2학년 선배 1명) 그리고 우리 기타와 밴드부의 남자보컬인 3학년 선배님의 마지막 공연 정말 마지막으로 듣는 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슬펐다.

(1기선배의 공연)

 그렇게 졸업공연이 끝나고, 나는 전날의 무리와 함께 저녁도 먹지않고 뻗어버렸다. 그렇게 3학년들의 말이 시작된지도 모르고 9시까지 자버렸다. 혹시나 끝났을까 문자를 한통 넣어보았는데, 아직 안 끝났다고 오하 하였다. 그래서 나는 늦었어도 머리 정리하고 갔다. 그리고 선배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들었고, 선배들의 말이 즐겁기도 하고 터 놓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훈훈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앞에 선배들의 말을 못들어서 그런지 아쉬웠다. 그래도 나를 1년동안 바쁘셔도 가르처주신 멘토 형의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멘토 형의 서툴지만 프리스타일(랩)으로 발표하는 마지막 말을 듣는데 왜 그렇게 슬픈지....울뻔했다. 그러나 울지 않고 나는 웃기로 했다. 울더라도 졸업식날 울기로 하고....... 그렇게 선배들의 말을 하나하나 듣고, 6시30분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났던 5시간 30분 동안의 긴 이야기...... 끝나고 졸업식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선배들과 추억 쌓는다고 밤을 새어가며 놀았다.

  다음 날 우리도 방학이라 짐을 싸서 나와야 한다. 그래서 짐을 싸서 방송실에 올려다 두고, 아침을 먹고 선배들 짐 옮기는 거 도와드리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에 온 아빠한테 모든 짐을  다 가져다드리고 나는 다시 졸업식을 준비했다.

 선배들이 '우리 웃으면서 헤어지자' 라고 해서 정말 웃고 있었는데 세족식할떄 주변에서 점점 울음이 터지고 나도 참지 못하고 결국 울었다.  많은 선배들이 울었고 몇몇 선배들은 왜 우냐고 하며 달래주기도 했다.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상장 수여중)

 선배들과 함께 했던 장난 때론 진지한 이야기들 까지 중학교때와 달리 새롭고 특별한 행사들 중학교 졸업할때, 친구들과 헤어질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던 내가.......

  우리는 2줄로 서서 떠나가는 선배들을 한명한명 끌어안고 울면서 하고 싶은 말 하고 작별을 맞이 하였다. 나는 정말 태봉에서 2013년 울지 않고 참았던 눈물들 시원하게 이 날 선배들을 배웅하면서 다 흘렸던 거 같다....

 1년동안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방송 이라는 일을 가르처주고 기본기도 안되어있는 나에게 편집을 가르처주었던 3학년 지금은 졸업해버린 나의 멘토형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학교 자주 와요....

 

(졸업생)

 1년동안 고마웠습니다. 또한 즐거웠습니다. 저희의 심한 장난이나 반말에도 웃으면서 넘어가주셨던 선배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우리들끼리 외쳤던 공동체와 가족 그 의미를 모르다가 이제서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학교 자주 놀러와요... 그리고 형들, 누나들 정말 사랑해요!

Posted by 감성사진사
,

     이번 국토순례는 여수-구례-전주-대전-증평-여주-구리-임진각 코스로, 항상 임진각으로 도착하는 생명 평화의 발구름이라는 주제로 통일을 생각하며 전국에 있는 소수의 청소년들이 신청하여 자전거를 탄다. 올해에는 마산합포구청에서 모여서 마산회원구청(마산운동장)까지 자전거 대형을 만들어서 자전거 도로주행 연습을 하고 출발했다.

     이번 해는 작년에 비해서 사람 수가 급증하였다. 이번에 마산이 30명으로 전국에서 2번째로 사람이 많았다. 아마도 그 이유가 작년과 재작년에 온 참가자들이 다시 참가를 해서 더 그런 것 같았다. 3년째 참가자여서 다른 애들보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훨씬 편했다. 사실 내년에 고2가 되었을 때, 학교에서 프로젝트로 자전거 국토 순례단을 촬영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찍을 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인터뷰 질문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국토순례는 예상외로 많이 힘들었다. 처음에 580km 라고 해서 작년과 재작년에 비교해서는 훨씬 쉬울 것 같다라고 생각 하였다. 그러나 반전! 아니였다. 가보니 예상외로 언덕과 산 오르막길이 많았고, 2번째 날이 절정 이였다. 정말 힘들었다. 이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재미를 느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려갔다가 하면 보통 쳐지는 애들도 많이 생겼었다.

     그러나 올해 마산 팀은 달랐다. 애들이 오르막길에서 로드대장님을 추월할 정도로 잘 탔다, 라기 보다는 애들이 힘이 남아서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마산 팀은 정말 잘 탄다는 칭찬을 들었다. 정말 선생님들이 아니라 다른 지역 아이들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잘 타는 것 같긴 했다.

     보통 다른 지역 애들이 칭찬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이였다. 나는 작년과 제작년을 겪어 오면서 많은 것을 터득했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도 터득했다. 그래서 난 내가 많이 성장 했다고 생각해서 콘티를 짜서 2학년 때에는 영상을 촬영하러 오겠다.’ 라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힘든 코스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성장했고, 1이다. 더 이상 아프다고 자전거를 타지 않는 짓은 내 자신이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열심히 탔고 빨리 오르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차분히 올랐더니, 다른 아이들보다 실력이 늘었던 것도 있지만 내 마음가짐에도 많은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다. 매년 자전거 국토순례 참가하기 전에는 아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연습을 했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태봉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방송부라는 동아리에 입부 한 이후로 너무 바빴다. 학교에서 하는 각종 행사와 선생님들의 요청에 의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바쁘게 살았다.

     그래서 사실 국토순례 오기 전 1학기에 나를 성장하는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였고, ‘학교라는 공동체를 위해서 뛴다고 우리반에 더욱 신경을 못 썼던 것 같다. 그래서 반 여행을 가서 꼭 우리반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다 오겠다고 다짐을 하고 갔었다. 그래서 23일 반 여행을 끝내고, 나 혼자 새벽 배를 타고 나왔다. 바로 국토순례를 참가하기 위함 이였다.

     반 친구들과 더 어울리고 싶어서 국토순례 당일에 전화해서 가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안된다는 것 이였다. 당연한 결과고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몸살도 나고 해서 정말 가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일단 참가 했다. 그러나 국토순례 기간 첫날과 2번째날 사실 너무 힘들었다. 내가 고1 이여서 참고 열심히 탔다. 그래서 나의 새로운 다짐은 콘티라도 제대로 짜서 집에 갈수 있도록 해보자라는 생각 이였다. 그러나 실패였다.

     나의 첫 계획부터 펑크였다. 그래서 일단 올해 국토순례를 갔던 사진들로 영상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올해뿐만 아니라 내가 참가한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사진을 전부 받아서 5분에서 10분 정말 길면 30분정도의 영상도 만들어 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년에는 꼭 촬영팀으로 같이 가고 싶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못 가게 된다면, 나는 로드팀으로 라도 들어가고 싶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촬영팀에 들어가고 싶다.

Posted by 감성사진사
,

      드디어 1학기가 지나가고 여름방학을 맞이 하였다. 한 학기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방송일만 열심히 해서 학업에 소홀히 여겼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여름방학에는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여름방학 동안 자전거 국토순례와 반 여행 그리고 끼모아 촬영 등을 가야했다. 그러다 보니 반 여행과 국토순례를 다녀오면 방학의 절반이 지나간다. 

      그리고 방학의 절반을 보내고 나면 연극부(끼모아)가 서울에 가서 대회에 나가야 한다. 때문에 2학년 선배와 나는 촬영하러 같이 가야만 했다. 나는 태봉을 다니면서 태봉앓이를 방학전에 했다. 그래서 힘들고 지치고 했으나 방학을 하고 점점 괜찮아졌다. 

     여태까지 학교에서만 일주일을 보내다가 집에 있으려고 하니 삶이 막막했다. 어떻게 계획을 짤지도 잘 모르겠고 했다. 그리고 방송부 라는 동아리의 1학년은 거의 나밖에 없었다. 거의가 아니라 방송부원이 있어도 설치와 해체는 나와 2학년 선배 2명이서 하였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스트레스와 짜증이 났고 그래서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뛰니까 혜택이 많아지고 할일도 늘었다. 1학년에 일할 만한 애가 없다고 행사부에 날 넣었다. 그래서 나는 간부 라는 것이 되었다. 나는 간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잘 된거 같다. 그래서 나의 2번째 목표는 부장이 되는 것이다. 2학년으로 학년이 올라갔을때 방송부 라는 곳의 장이 되고 싶었다.

     나의 작은 바램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Posted by 감성사진사
,

                     태봉고등학교에 입학한지 3달이 되어간다.

   태봉고에 와서 처음에 정말 무엇을 해야할지도 몰랐고 계획도 없이 지냈다. 그러나 면접없이 방송부에 들어갔다. 처음 방송부에 들어갔을 떄에는 정말 할게 없었고, 그냥 우리학교의 특징인 '공동체 회의' 와 '주열기' 시간이 있다. 주열기 시간과 공동체 회의 시간에 마이크 같은 장비들을 설치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게 없었다. 

  1,2주 정도가 지나고 점점 방송부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 뒤에 중간고사를 치르고 1학년은 제주도 이동학습을 갔다. 드디어 방송부로서 해야 할일이 생겼다. 제주도에 캠코더를 들고가서 애들을 찍는 일 이였다. 나는 드디어 해볼 만한 일이 생겼고 캠코더를 들고 열심히 찍어댔다. 

   제주도를 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캠코더를 들고 찍었는데, 이게 앞에서 걸으면서 찍는게 아니라 삼각대를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체력소모가 컸다. 그래도 처음엔 즐겁게 찍었지만 점점 다리에도 부담이 되고 다른 애들에 비해 체력소모도 컸다. 그래서 3일째 되는 날 부턴 차를 탔다. 그렇게 제주도를 차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친구들을 촬영하였고, 제주도에서 돌아와서 제주도에서 찍은 영상을 편집하려고 하였으나,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제주도 영상은 편집을 하려고 하니 너무 막막했고, 이후에도 계속 다른 여러 영상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제주도  영상을 만드는 것이 밀렸다.

  제주도를 갔다오고 1달이 지나는 동안 수학숙제로 영상을 1개 만들고 미술숙제로 영상을 1개 만들고 하면서 편집하는 것이 익숙하지 못해서 인지 좀 느렸다. BGM(배경음악)을 깔려고 하니 어떤 것을 깔아야 할지 잘 모르겠고, 하였다. 

  그렇게 3개 정도의 영상을 만들고 있으며 3학년 선배의 말에 의하여 1학년인 나와 2학년 선배들 해서 작품을 1가지를 만들어서 공모전에 나가 볼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동아리에 들어가서 바쁘기 시작했지만, 나는 처음엔 할게 없었으나 방송부에 적응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재미있게 할수있는 일이여서 인지 열심히 하게 되었고, 목표는 내년에 2학년이 되었을때 방송부 부장을 맞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Posted by 감성사진사
,

     태봉고등학교에 다닌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4월1일 만우절 저희는 월요일 아침에 만우절 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다녔고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기 힘들었습니다.

     태봉고에선 신입생들이 만우절 이라고 엄청난 패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희 옆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책상을 하나씩 들어서 밖으로 옮겼습니다. 옆반이 옮기자 저희반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4교시 시작 전이였고 저희는 빠르게 옮겼습니다.

     옮기는 중에 선배들이 나와서 사진도 찍고 저희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다들 나와서 사진을 찍고 선배들도 놀고 신입생도 놀고 하다가 수업시간이 되었습니다. 1반은 수학 시간이였고 저희반은 사회 시간이 였습니다. 사회선생님이 영상 봐야 한다며 빨리 들고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1반은 수학선생님이 직접 나가서 수업을 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수학선생님이 출석을 부르고 계셨고, 저희는 책상을 옭기고 수업을 받았습니다. 1반은 4교시에 자렇게 수학수업을 하고 점심 먹으러 갔다가 이후 미술시간이 되자 책상과 걸상을 들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일반 고등학교 였다면 선생님이 재밌다며 이런식으로 수업을 하셨을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희 학교 선생님도 정말 대단한 거 같습니다. 화도 않내시고 이렇게 수업 하시고 정말 대단한 거 같습니다.

Posted by 감성사진사
,

     기숙형 학교인 태봉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계속 컴퓨터를 쓰는 일이 없다가 어제 선배들의 허락을 통해서 컴퓨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을 써봅니다……….

     어제 학교에서 처음으로 LTI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드바이저 선생님도 정해졌고 멘토를 나갈사람과 학교에 남아 있을 사람으로 분류하여 나갈 사람은 나가고 나가지 않을 사람은 학교에 남았습니다. 저는 멘토 해주셨으면 좋겠는 분이 있어서 오늘 그 분께 찾아가려 했으나 현금이 모자라서 학교에 남았습니다. 학교에 남아 방송실 대청소를 하였습니다.

     남아서 방송실을 쓸고 책상도 옮기고 하면서 방송실을 청소했습니다. 1학년들인 저희들은 원래 총 4명 이였으나 저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LTI하러 교내에 있는 까페로 갔고, 저는 쓰레기통을 비우고 올라와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방송부 선배들과 함께 청소를 했습니다.

     신입생이여서 그런지 역시나 심부름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선배들이 배려를 해줬다고 생각이 들려고 할 정도로 형들도 걸레로 바닥 닦고 저한테만 시키지 않았습니다.

     청소도 하고 2월 29일 오후8시에 신입생 페스티벌을 합니다. 그래서 그떄 방송부가 음향과 조명을 조절하는데 저는 조명은 아직 못배워서 음향을 맡았고 그리고 조명보다 음향이 더 쉬웠습니다.

     1학년 학생들 총 4명과 소수의 2,3학년 선배들과 함께 작업을 할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 1학년들이 할 것 이라고 선배들이 경고 했습니다. 또한 선배들은 신입생 페스티벌이 끝나고 나면 힘들어서 거의 다 나갈 것 이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비 다루는 일을 배우고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절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하여 방송부에서 퇴출도 당하지 않게 열심히 할 것 입니다.

     오늘 LTI시간에 버스비가 모자라서 나가지 못하여 방송부 청소를 했으나 다음엔 꼭 나가서 멘토가 되어달라고 할 것 입니다.

     이번에 못한 것 까지 열심히 노력 할 것 입니다. 방송실의 공간이 넓어지고 깨끗해져서 기분도 좋아졌으며, I MAC 이라는 애플 제품이 들어와 방송부의 분위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방송부에 애플 시리즈들을 모였습니다.

     신기했고 정말 많이 부러웠습니다. 저도 애플 시리즈가 정말 가지고 싶습니다. 일단 먼저 가지고 싶은 것은 아이패드, 아이폰, I MAC이 가지고 싶습니다. 다음에 아빠가 안민고개를 자전거 타고 25분만에 오르면 아이패드를 사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꼭 성공하여 아이패드를 얻어 낼 것 입니다.

'태봉고등학교 > LT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꿈을 품게한 퍼실리테이터 라는 꿈  (0) 2014.02.24
Posted by 감성사진사
,

꽃피는 고래

독서 2013. 2. 27. 08:30

     고등학교 추천도서들 중 '꽃피는 고래'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꽃피는 고래의 줄거리는 주인공 니은이가 부모님을 잃고 학교에 가는 것도 힘들어져 부모님들의 고향인 처용포에 내려가 잠시 쉬게 되는 이야기 입니다.

     처용포에서 니은이는 왕고래집 할머니와 장포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점점 생기를 찾아갑니다. 장포수 할아버지는 17살때 부터 고래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고래를 잡았는데 이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부터 고래잡는 솜씨가 훌륭했었습니다.

     그러나 처용포에 고래 잡는 것이 금지 되었고, 결국 고래배는 쓰지 못하고 계속 두었습니다. 나중에는 박물관에 기증하게 되는데 장포수 할아버지가 너무 아끼던 배여서 인지 준다고 해놓고는 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떠나게 됩니다.

     왕고래집 할머니는 니은이가 힘을 낼수 있도록 심부름을 시켜 밖에 내보내기도 하고 글을 배우고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숙제도 도와달라 하고 그랬습니다.

     니은이는 부모님을 잃고 절망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덕분에 점점 일어서게 됩니다. 할아버지가 17살에 바다에 나가서 고래를 잡고, 할머니는 16살에 시집을 갔다고 했고 지금 니은이 나이는 17살 이였습니다. 그래서 니은이가 생각 한 것은 어른이 되겠다는 것 이였습니다.

     그래서 니은이는 학교친구 나무의 도움을 받아서 나무의 언니의 신분증을 이용해서 니은이를 편의점에 알바를 시켜주었습니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으나 자기의 처지에 대한 슬픔과 분노에 참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편의점 알바에 3일만에 짤리고 나옵니다. 이후에는 할아버지를 돕고 할머니를 도우면서 점점 회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왕고래집 할머니가 못배우면 나중에 자기처럼 후회한다며 학교에 나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학교애 다시 나오게 된 니은이는 담임쌤을 만나게 되고 쌤은 니은이를 강제 휴학을 시켜서 내년 3월에 2학년이 될수 있도록 해 두었다고 2학기에는 학교에 나오지말고 새학기가 시작될때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니은이는 학교 근처엔 혼자고 할게 없어서 다시 처용포로 내려와서 살게 됩니다. 니은이가 어른이 되려고 나무의 언니에게 해서는 안될 것들을 배우는데 그것은 엄살, 변명, 핑계, 원망 이 4가지를 하지말고 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을 보니 니은이가 자기의 감정을 이겨내고 근처에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어나는 것이 정말 좋아 보였습니다. 마지막에 장포수 할아버지가 떠나는 것이 조금 슬프기는 했으나 니은이가 잃었던 것을 되찾지는 못해도 극복해서 일어나는 것이 정말 인상 깊게 본거 같습니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으로 다시 본 완득이  (0) 2013.02.18
26년 그 슬픔의 이야기  (0) 2013.02.04
연금술사  (0) 2012.08.20
인더풀  (0) 2012.08.16
Posted by 감성사진사
,